미국 역사상 대통령에 대한 탄핵이 시도된 것은 3차례로 그 중 두 경우는 우리도 목격한 바가 있다. 닉슨과 클린턴, 두 대통령에 대한 탄핵시도인데 그 결과는 정반대이다. 닉슨은 탄핵안의 하원 통과로 스스로 물러났지만 클린턴은 탄핵안이 하원에서 부결돼 대통령직을 유지한 것은 물론 오히려 권력기반을 강화했다.
무엇이 이런 정반대의 결과를 가져 왔을까. 물론 탄핵 이유가 다른 탓도 있다. 닉슨은 야당 사무실을 도청하고 이를 은폐한 탓으로, 클린턴은 르윈스키와의 성추문으로 탄핵에 회부됐다. 닉슨의 경우는 대통령의 직위를 남용했다는 공적(公的) 이유의 추문이고 클린턴의 경우는 개인의 도덕성에 관한 문제였다. 미국 국민들이 클린턴의 경우 대통령의 직무수행과는 별개라고 본 것이 탄핵안이 부결된 이유라고 보는 관점이다.
그러나 그것보다는 추문에 대응하는 방식이 틀린 것이 정반대의 결과를 낳은 진짜 이유라고 보는 학자들이 많다. 클린턴은 르윈스키와의 성추문에 대해 잘못을 솔직히 시인한 반면 닉슨은 워터게이트 사건과의 연관에 대해 침묵과 부인으로 시종했다. 그러다 사건의 은폐, 조작을 지시한 녹음 테이프가 공개되면서 그간의 부인이 거짓말이라는 사실이 백일하에 폭로됐다. 만일 닉슨이 초기에 시인하고 사과를 했더라면 어떻게 됐을까. 정치적으로 타격은 받았겠지만 탄핵까지 가는 일은 없었을 것이라는 게 닉슨 탄핵을 연구해 온 학자들의 대체적인 견해이다. 대통령의 거짓말에 대한 국민의 심판은 이렇듯 추상같다.
나라를 흔들고 있는 '안기부 도청'파문과 관련, 역대 대통령들의 거짓말이 드러났다. 김영삼, 김대중 두 전 대통령은 도청에 관한 한 최대의 피해자라고 자처했던 사람들이다. 김영삼 대통령은 그래서 취임하자마자 통신비밀보호법을 만들고는 도청은 있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김대중 대통령도 예외는 아니다. "내가 정치사찰과 도청의 최대 피해자다. 이것을 없애는 것이 내 필생의 신념이다." 김대중 대통령이 여러 차례 한 말이다. 박정희 전 대통령으로부터 이어지는 군사정부 시절 혹독한 탄압을 당했던 그가 한 말이었기에 그 누구의 말보다 믿음이 갔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런 말들이 거짓이라는 것이 백일하에 드러났다. 그것도, 다른 누구도 아닌 그 도청의 실행조직인 국정원의 발표에 의해서이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활동을 않고 있던 도청팀을 새로 구성해 광범위한 도청을 해 왔다. 김대중 대통령도 재임 중 도청 논란이 일자 "도청은 안 한다고 국민 앞에 엄숙히 말하고 싶다"고 다짐했다. "안심하고 통화해도 됩니다"라는 광고까지 냈다. 그러고도 국정원 발표에 따르면 재임 4년간이나 도청을 계속하다 2002년 3월에야 도청을 중단했다.
이것만 해도 속이 뒤집어질 판인데 이런 사실이 드러난 후 보여주고 있는 모습은 가관이다. 김영삼 전 대통령의 경우 딱 부러지는 부인이 없는 게 그나마 다행이라면 다행이기는 하다. '안기부 X파일'이라는 물증이 있는 탓이다. 대신 "하이고…날씨가 덥제…"라며 딴청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쪽은 한술 더 뜨고 있다. 도청에 대해서는 아무런 말이 없으면서 노무현 정부가 그 사실을 밝힌데 대해 격앙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터져나온 진실을 어떻게 덮느냐"는 노무현 대통령의 발언이 옳은 것 같은데 말이다. 국정원의 자백은 있으나 물증이 없는 탓이다. 당사자인 김대중 전 대통령은 말 한마디 없이 갑자기 입원을 하고 말았다. 폐렴 초기의 가벼운 증세라지만 '병상(病床)시위'의 느낌도 없지 않다.
국민은 지금 정부에 극도의 불신감을 갖고 있다. 지나간 정부의 일이라고는 하나 대통령이 국민에게 거짓말을 할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그렇다면 적어도 그 거짓말에 대한 사과라도 있어야 할 듯한데 그 대신 보여준 반응이 '딴청'과 '격앙'이다. 전직 대통령이니 탄핵의 방법도 없는 터이다. 결국 국민들만 또 한번 속이 터질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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