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공무원노동조합 부산지역본부 동래구지부

전공노가 이날 공개한 72개 기초자치단체의 업무추진비 부당 지출 사례를 보면, 단체장이 업무추진비로 기자·경찰 등에게 촌지를 주는 등 여전히 ‘쌈짓돈’으로 사용하고 있는 실태가 드러난다.

■ 부당 현금 지출 일삼는 단체장들 이형구 경기 의왕시장은 2008년 2월5일 ‘시정업무 추진 및 지역 현안사항 해결’, ‘주요시책·사업추진 격려·간담회 실시’, ‘현업부서 격려’ 명목으로 각각 25만원, 15만원, 30만원 등 모두 70만원을 현금으로 가져갔다. 일주일 뒤인 2월13일에도 같은 명목으로 20만원, 30만원, 20만원 등 70만원을 수령했다. 이 시장은 전공노의 조사 기간 마지막인 2008년12월까지 일주일 간격으로 70만원씩 현금을 가져갔다.

하지만 이 돈이 어디에 사용됐는지 파악할 수 있는 수령증 등은 없었다. 의왕시 관계자는 “매주 70만원씩을 현금으로 비서실에 갖다드리면 시장님에게 전달된다”며 “구체적 사용 명세는 알 수 없고, (그렇다고) 시장님에게 일일이 영수증을 달라고 할 수도 없지 않느냐”고 말했다.

심의조 경남 합천군수는 2008년 5월14일, 4차례에 걸쳐 420만원의 현금을 업무추진비에서 가져갔다. 앞서 그 해 1월에는 100만원, 2월에는 3차례에 걸쳐 320만원, 4월에는 420만원을 현금으로 받았다. 이 돈을 포함해 심 군수가 2008년 한 해 동안 가져간 현금은 모두 39차례에 걸쳐 3960만원에 이른다. 심 군수는 이 돈을 ‘지역 체육대회 격려’ 명목으로 면장 5명에게 20만원씩 100만원을 지급하는 등 공직선거법에 저촉될 소지가 큰 곳에 사용했다. 또 ‘현대중공업 연수원 유치 제반활동비’, ‘국정설명회 참석 제반활동비’ 등 포괄적으로 규정된 항목에 돈을 쓰면서 사용처에 대한 영수증도 남기지 않았다.

이들 자치단체 뿐 아니라 전공노가 선관위에 조사를 의뢰한 72개 지방자치단체 가운데 충북 괴산군, 부산시 사상구 등 16곳의 단체장·부단체장이 현금을 수령해 최종수요자가 명확하지 않은 곳에 쓴 것으로 나타났다. ‘업무추진비 집행기준’에는 현금 지출은 최종수요자의 수령증을 첨부하도록 하고 있다. 또 현금 지출은 축·조의금 등 현금 집행이 불가피한 경우에 한해 최소한으로 사용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오영택 전공노 부정부패추방위원회 위원장은 “돈의 사용처가 확인되지 않으면 모두 횡령 혐의가 있는 것으로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 기자·공무원 촌지, 상품권 관행 여전 기자나 경찰 등에게 금품을 주는 관행도 여기저기서 나타났다. 전북 정읍시 기획감사실은 2008년 1월30일 설 명절 때 일간지·방송사 등의 출입기자 23명에게 업무추진비에서 현금 20만원씩을 ‘격려금’으로 건넸다. 같은 날 정읍시 부시장도 이들에게 10만원씩 격려금을 지급했다. 정읍시는 2008년 1년 동안 4차례에 걸쳐 모두 1010만원의 현금을 기자들에게 준 것으로 나타났다.

경남 진주시 공보담당관실도 2008년 2월5일 진주시를 출입하는 간사 기자에게 100만원을 격려금으로 지급했다. 그해 9월9일에도 간사 기자에게 100만원을 격려금으로 주는 등 2008년 한 해 동안 11번에 걸쳐 710만원의 격려금을 기자들에게 썼다. 또 추석과 새해 등 명절에 3차례에 걸쳐 187만4천원어치의 상품권을 사서 기자들에게 돌렸다. 이외에도 경기 가평군과 안성시, 경북 울주군 등 모두 17개 지방자치단체가 관행적으로 촌지를 주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대해 정읍시 관계자는 “관행적으로 명절에 기자들에게 격려금을 지급해왔다”며 “지난해 추석부터 그런 관행을 없앴다”고 말했다.

경찰도 ‘촌지’의 단골 수령처였다. 정기호 전남 영광군수는 2008년 7월29일 ‘영광경찰서 전의경대 하계 단체 훈련 격려’ 명목으로 50만원을 업무추진비에서 지출했다. 그러나 이 돈의 수령처는 문아무개 당시 영광경찰서 정보과장이었다. 이덕우 전공노 부정부패추방위원회 부위원장은 “명세를 확인하다보면 ‘질서 유지에 수고하는 경찰을 격려한다’는 명목으로 돈을 지출해놓고, 돈의 수령처는 정보과 형사인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직무규칙상 경찰에 격려금을 줄 때는 현장에서 근무하는 당사자 혹은 서장에게만 줄 수 있고, 정보과 형사 등은 격려금 전달 대상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 군수 담배도 업무추진비로? 쉽게 납득이 가지 않는 업무추진비 사용처도 눈에 띄었다. 충북 영동군은 2008년 1~12월에 7월을 제외하고 매달 25만원을 ‘부속실(군수) 운영물품 구입’에 사용했다. 영수증을 직접 떼보니 모두 한 상표의 담배 10보루를 매달 구입한 금액이었다. 업무추진비로 군수 담배를 산 셈이다.

영동군 관계자는 “적절하지 않은 사용으로 판단돼 2009년부터는 담배 구입을 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단체장이 특정 사업을 성사시키기 위해 업무추진비를 사용한 경우도 있었다. 황철곤 경남 마산시장은 2008년 5월에 집행한 업무추진비의 절반(343만9천원)을 ‘에스티엑스(STX) 유치 반대자 설득 활동 격려비’로 사용했다. 마산시가 2006년부터 추진한 ‘에스티엑스 조선소 유치 사업’은 환경오염 논란과 보상 문제 등으로 지금까지 논란이 되고 있는 사업이다. 2008년 5월30일 실시된 찬반투표를 앞두고는 경찰, 시민단체 등에게 ‘에스티엑스 조선소 유치 찬성’을 독려하며 밥을 사는 데 업무추진비를 대부분 사용했다.

오영택 전공노 부정부패추방위원회 위원장은 “2008년 행정안전부가 업무추진비를 사용할 수 있는 직무활동을 9개로 분류해 자세히 규칙을 정했지만, 이번 조사 결과 이런 규칙이 여전히 지켜지지 않고 있는 사실이 드러났다”고 말했다.

박수진 기자 jin21@hani.co.kr

대구 8개 기초단체 비교적 ‘우수’
전국공무원노동조합(전공노)이 업무추진비 집행 실태를 조사한 기초지방자치단체 중에선 모범사례도 있다.
대구의 8개 기초지자체(중구, 동구, 서구, 남구, 북구, 달서구, 달성군, 수성구)는 증빙서류나 사용 명세 등 기본적인 서류가 잘 갖춰져 있고 부당하게 사용한 업무추진비도 다른 지역보다 적다. 또 정보공개 때 공개한 내용과 전공노가 직접 열람한 지출 내용도 일치했다.
대구 동구청(구청장 이재만)의 경우, 2008년 단체장·부단체장 등의 현금 지급은 대부분 축·부의금으로만 사용됐다. 특히 구청장은 선거법 위반 논란이 생길 수 있는 외부인사 등을 제외한 구청 직원에게만 업무추진비로 축·부의금을 사용했다. 업무추진비로 물품을 구입하면 용도와 받는 사람이 부적절할 가능성이 많은데 대구 중구청(구청장 윤순영)과 남구청(구청장 임병헌) 등은 물품 구매가 아예 없거나 아주 적게 구입했다.
인천시도 부평구를 제외한 9개 기초지자체(남동구, 동구, 중구, 남구, 연수구, 계양구, 서구, 강화군, 옹진군)는 증빙서류가 명확한 편이며, 부당하게 사용한 업무추진비가 적다. 계양구청(구청장 이익진)은 현장 근무를 하지 않는 직원 등에 대한 현금 격려금이 없었으며, 남구청(구청장 이영수)은 지급 대상이 명확하지 않은 물품 구입이 많지 않았다.
그 외에도 경남 남해군청(군수 정현태)과 전북 부안군청(군수 김호수)은 단체장의 부당한 현금 지출이 거의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남해군청은 단체장이 업무추진비로 직원 경조사비 정도만 사용했고, 부안군청은 2008년에 사용한 업무추진비 1940만원 가운데 단체장의 현금 지출이 거의 없었다. 김민경 기자 salmat@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