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 주민들에게는 시장·군수가 별것 아닌 것으로 보일 수도 있겠지만 공무원 입장에서는 감사·인사권과 예산편성권까지 모두 가진 존재라서 절대적입니다. 말을 안 듣거나 눈 밖에 나면 끝입니다.”(하동군 공무원 이모씨)
“인사가 공정하면 공무원이 중심을 잡고 일을 할 수 있을 겁니다. 그런데 중립을 지켜야 할 공무원에게도 선거 때는 줄서기가 강요되지요. 심지어 어떤 시장은 특정 공무원에게 선거 자금을 달라고 요구하는 일도 있었다고 들었습니다.”(거창군 공무원 김모씨)
“단체장 권한이 얼마나 큰지는 의회와 견줘보면 잘 알 수 있습니다. (비리 의혹을 받고 있는) 공무원을 꼼짝 못하게 하는 모든 권한을 갖고 4년 임기 보장되는데다 3선까지 12년 동안 할 수도 있잖습니까?”(공무원노조 조경원 산청군지부장)
2002년 지방선거가 끝난 뒤 김태호 당시 거창군수는 배모 거창읍장을 웅양면장으로 전보했다. 김 군수는 정당한 인사권 행사라 했으나 공무원 사이에서는 배 읍장이 선거에서 김 군수 상대 후보를 밀었기 때문에 좌천됐다는 얘기가 파다했다.
2004년 5월 김종규 창녕군수는 공설 운동장 인조 잔디 까는 공사를 하면서 설계 변경 등을 통해 자기에게 뇌물을 준 업자에게 유리하게 하려 했으나 담당 공무원 조모씨가 지시를 무시하는 바람에 무산됐다.
조씨는 그 뒤 감사과 조사를 받고 군청에서 면사무소로 옮겨가는 인사 조치를 받았고 김 군수는 뇌물 혐의로 기소돼 올 8월 1심에서 유죄 선고를 받고 구속됐다가 보석으로 풀려난 상태로 부산고법에서 항소심 재판을 받고 있다.
단체장의 무한 권력을 엿볼 수 있는 보기는 뜻밖에 태풍 매미에 따른 수해 복구 사업에서도 찾을 수 있다. 2003년 9월 당시 거창·창녕·의령·고성군에서 부단체장과 재무과장 경리계장으로 있던 공무원 12명이 현재 기소돼 있다.
이들은 수해 복구 계약을 하면서 업자에게 공사 예정가를 미리 알려주고 수의 계약을 편법으로 하게 한 혐의(공무상 비밀 누설)를 받고 있는데 묘하게도 자치단체 행정의 최고 책임자인 군수들은 모두 빠져 있다.
이는 법령상 단체장이 아닌 부단체장이 경리관으로 돼 있기 때문인데 이를 두고 검찰에서는 ‘심증은 가지만 물증이 없다’고 말하고 있는데 실제로 군수가 개입돼 있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드문 편이다.
문제는 이처럼 단체장의 불법부당한 업무 지시로 아랫사람이 혼나는 일이 공직 사회에서 심심찮게 일어난다는 데 있다. 공무원노조 도청지부 홈페이지 자유게시판에는 상사의 잘못된 지시 때문에 파면당한 사연이 올라 있다.
“친한 친구로부터 부당한 상사 지시를 따랐다가 파면이 됐다는 전화를 받았다. 상사는 견책을 받고 계속 근무한다고 한다. 하소연을 듣고 있자니, 괜히 하위직 신분이 서글퍼졌다. 고위직은 떠나면 그만이지만 한창 일할 담당자를 해코지하면 안된다. 하위직도 윗사람에게 잘 보이려고 규정·법령을 어기면서까지 복종하면 안된다. 노조가 나서 규정·법령을 어긴 사례를 모으고 그것을 지시한 고위직은 공개하기 바란다. 그래야 부당한 압력 또는 지시가 사라지고 하위직들이 소신껏 일할 수 있을 것이다.”
선거때 줄서기 안한 하위직 공무원에 인사 불이익
◇예산편성권도 '단체장 손 안에'
“선거에서 공약을 하지 않습니까? 단체장 의중(공약)에 없는 사업은 예산이 한정돼 있다보니까 아무리 중요해도 채택되기 어렵습니다. 김혁규 지사 시절 지리정보시스템(GIS) 구축 사업이 보기입니다. 결국 국가사업으로 추진될 때까지 사장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단체장이 누가 되느냐에 따라 큰 방향이 결정되는 셈입니다. 결론적으로 지금 민선들은 지역을 위해 기초를 닦기보다는 눈에 확 띄는 큰 사업을 벌여 금방 성과를 만들고 다음 선거에서 공천을 받는 데 온통 신경이 가 있습니다.”(공노조 윤종대 경남도청지부장)
이런 보기로 대표적인 것은 지금 열린우리당 국회의원인 김혁규 전 지사의 F3 자동차 대회 시행과 그에 이은 자동차 경주장 건설·F1대회 유치를 들 수 있다.
2003년 당시 김 지사는 2000억원을 들여 진해 경제자유구역에 자동차 경주장을 만들고 국제 규모로 치러지는 F1대회를 유치하면 고용 창출과 함께 관광산업 진흥, 자동차 산업 발전, 홍보 등 커다란 효과가 있다고 호언을 했다.
F1 사례 등 눈에 띄는 대형사업 무리하게 진행
당시는 이미 1999년부터 창원에서 진행된 F3대회로 주민들은 엄청난 소음에 시달리고 있었고 공무원과 관련 단체들은 표 팔이로 전락해 곳곳에서 ‘강매’ 말썽이 일고 있었다.
이를 두고 김태호 도지사는 취임 첫 해인 2004년 처음에는 대회를 안 하면 77억원 넘게 들여 지은 경주장 시설을 사장하게 된다며 계속 개최 뜻을 밝히기도 했으나 F3대회는 열지 않기로 했다. 이어서 2005년 5월 타당성 조사 용역을 거쳐 투자비용이 예상보다 1300억 많은 3300여억원이 되는데다 수익성은 생각보다 낮고 예정터의 안정성도 떨어진다는 등 이유를 대며 F1대회 유치를 포기했다.
결과적으로 김 전 지사는 수익성이 얼마나 되고 예정터 안정성은 문제가 없는지, 그리고 투자비용이 얼마나 드는지 등 필수 검토 사항도 제대로 따져보지 않고 F1 대회 유치를 공언한 셈이다. 더욱이 F3대회의 경우 99년부터 2003년까지 5년 동안 경주장 건설 등 모두 300억원 넘는 예산을 아무 보람 없이 쏟아부은 데 더해 해마다 민원과 말썽이 일어났는데도 김 전 지사의 ‘경영 행정’ 기치 아래 ‘중단 없이’ 추진된 셈이다.
표밭 갖고 있는 의원들 위해 부당한 예산집행 예사
◇의원들은 견제 대신 ‘빌붙기’
“양산에서는 예산에서 민주평통 자문회의에 운영비 빼고 사업비만 7000만원을 줬습니다. 평통 위원 가운데는 현직 시의원이 많습니다. 평양 가서 공연 구경하고 백두산 둘러보는 돈입니다. 자비가 절반이라지만 어쨌든 외유성으로 예산이 낭비됐습니다. 게다가 창원 3000만원인 데 견주면 지나치게 많기도 합니다.”(공노조 안종학 양산지부장)
이런 일이 일어나는 까닭은 의원들이 저마다 ‘표밭’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언제나 표를 의식할 수밖에 없는 단체장 입장에서는 이처럼 표밭을 갖고 있는 의원들 요구를 절대 무시할 수 없다는 것이다.
양산 공노조 안 지부장은 이어 “한 초등학교 축구부에 2억원짜리 대형버스를 사 주는 예산도 의회를 통과했다. 시의원이 학교와 관련이 있기 때문인데 공노조가 문제를 제기하는 바람에 집행은 되지 않고 있다”고 덧붙였다.
자치단체-의회, 긴장감 없는 주고받기식 관계 전락
하동에서는 개인 소유 땅의 밤밭 과수원에 이르는 산길을 자치단체 예산으로 포장해준 사례도 있는데 이 또한 해당 지역 출신 군의원의 요구에 따라 부당하게 집행된 것이다.
안 지부장은 이를 두고 “의회가 견제를 한다지만 단체장과 이렇게 주고받기를 하다 보니까 제대로 되지 않는다. 그래서 시장에게 부당하지만 거절하기 어려운 부탁이 들어오면 노조에 넘기라고 요구하기도 한다”고 했다.
의원들이 인사에 개입하는 일도 없지 않다. 마산 공무원 임모씨는 “모두 그렇지는 않지만 의원들 인사 개입은 공공연한 사실이다. 200～300명씩 대량 인사를 할 때 슬쩍 끼워 넣으면 표시도 안 난다”고 말했다.
2002년 8월 의령에서는 김모 군의원이 자기 지역구에 면장으로 발령받은 공무원 서모씨가 ‘주민들이 바라지 않는 사람’이라는 이유로 반대하고 그것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군수에게 막말을 하는 사태가 일어나기도 했다.
이 같은 주고받기는 포괄사업비에서 절정을 이룬다. 포괄사업비를 예전에는 ‘소규모 지역 숙원 사업비’라 했는데 슬그머니 이름이 바뀌면서 집행 결정을 해당 지역구 의원들에게 넘겨 놓은 것이다.
공무원 이모씨는 “명칭이 의원 포괄사업비로 바뀌었고 의원들은 ‘내가 따온 돈이다. 그러니까 계속 밀어달라’고 말한다”며 “이렇게 한통속이 돼 있으니까 집행부에 대한 견제가 이뤄질 리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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