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공무원노동조합 부산지역본부 동래구지부

동호회소식

홈으로 > 참여마당 > 자유게시판

등록시간: 2005년12월05일

퍼온글 홈페이지: - 조회 : 345

공무원노조의 민주노총 가입에 대한 판단 기준

노동조합에 대한 오해

이야기를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막막하다. 사람들이 노동조합에 대해 잘못 이해해온 세월이 수십 년인데 그 가장 기본적인 생각부터 바로잡지 않으면 노동조합에 대한 어떤 구체적인 이야기도 공염불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요즘 문제가 되고 있는 ‘뉴 라이트’ 운동에 관한 TV 토론에 참석했던 한 대학교수는 장시간의 갑론을박을 마무리해달라는 사회자의 부탁을 받고는 이렇게 말했다.

“연봉 8천만 원을 받는 방송사 직원들이 왜 노조 활동을 하는지 이해를 못 하겠어요. 그럼에도 현 정부는 친 노동 정책을 펴고 있습니다. 정부의 이러한 친 노동 정책으로 정규직 노동자들은 형편이 점점 나아지고 있지만 비정규직은 빈곤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노조는 뼈를 깎는 자성을 해야 합니다.”

사회운동의 이론적 토대를 제공하고 있다는 대학교수가 한 이 말은 얼핏 옳게 들릴지 모르지만 사실은 창피할 정도로 무식한 발언이다. 그 학자는 노동조합을 임금인상이나 하는 조직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분명하다. 방송사 노동조합 때문에 우리 방송이 이 만큼 공정해졌다는 것을 상상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 선진국의 판사들이 노동조합을 조직하면서 그 나라 법원의 판결이 공명정대해졌다는 것을 상상조차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방송사에 노동조합이 없었다면 우리들은 TV에서 <이제는 말할 수 있다>, <추적 60분>, <피디수첩> 등의 프로그램들 중에서 대부분을 시청할 수 없었을 것이다.

공무원노조 특별법의 잘못

정부가 마련한 공무원노조 관련 법안의 내용이 그렇게 우습게 만들어진 것도 노동조합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일천한 이해 수준 때문이다. 공무원노조가 아직까지 우리 사회에는 시기상조이지만 노동계가 그 합법화를 강력하게 요구하고 합법화되기도 전에 이미 수많은 공무원노조가 행정기관마다 설립됐기 때문에 마지못해 정부가 공무원노조를 합법화하는 것이라고 현 상황을 인식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가능한 한 공무원노조의 권한을 축소하는 방향으로, 가능한 한 적은 수의 공무원들이 참여하는 방향으로, 가능한 한 중요한 업무를 수행하지 않는 하위직들만 가입하는 방향으로 공무원노조 입법화를 추진할 수밖에 없다. 참 한심한 일이다. 공무원노조의 힘이 강력해질수록, 공무원노조에 참여하는 공무원들이 많아질수록 우리 사회가 올바로 발전하고 역사를 바로 세우는 속도도 비례하여 빨라진다는 것을 상상조차 못하기 때문이다.

왜곡된 근대화 역사

우리 사회에서 노동조합에 대한 이해가 올바르게 자리 잡는 것이 불가능했던 이유는 무엇보다도 왜곡된 근대화 과정 때문이다. 다른 나라와 달리 식민지 40년, 분단 60년, 군사독재 30년의 세월을 거치며 건설된 자본주의가 정상적인 사회가 될 수 있으리라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식민 통치 이후에 바로 분단이 이어지는 비극적인 역사를 가진 나라는 지구상에 별로 없다. 그 와중에 군사독재 30년을 겹치기로 겪은 나라는 더더욱 없다. 정상적인 근대화 과정을 거친 나라의 국민들이라면 단 1초도 겪지 못했을 비정상적인 역사를 우리는 100년 동안이나 겪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꽈배기처럼 비틀리고 왜곡된 역사 속에서 부정한 방식으로 재산을 모으거나 권력을 유지하면서 사회를 지배해 온 세력들에게는 노동자의 권리나 노동조합의 역할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사회 속에 광범위하게 자리 잡는 것이 치명적인 손실을 끼치는 결과를 초래한다. 사회 구성원 대부분이 노동자이거나 그 가족일수밖에 없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자의 권리와 노동조합의 역할에 대한 올바른 인식이 형성된다는 것은 부정직한 세력들에게 거의 사형선고나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다른 선진국들과 달리 제도권 교육 속에서 노동자의 권리와 노동조합의 역할을 중요한 비중으로 가르치지 못하고 있는 것은 그 때문이다.

그러한 사회에서는 노동조합의 작은 이익 추구 활동조차 왜곡된 100년의 역사를 지배해 온 세력들과 맞서는 정의의 투쟁이 될 수밖에 없다. 70년대 동일방직 여성 노동자들이 좀 인간답게 살겠다는데 박정희 군사독재정권과 맞서며 수백 명이 옷을 벗고 세계노동운동사에 전무후무한 ‘나체시위’를 벌어야 하는 상황이 되는 것이다. 공무원노조의 민주노총 가입이라는 선택조차 우리 사회에서는 왜곡된 100년의 역사와 맞서야 하는 결단이 될 수밖에 없다.

노동자들의 노동조합에 대한 인식

문제는 노동자들 중에도 노동조합에 대해 잘못 이해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다. 노동조합은 노동자들만을 위한 조직이라고 생각한다. 만일 노동조합이 오로지 노동자들에게만 유익하고 사회 전체에는 해로운 영향을 미치는 조직이었다면 전 세계의 거의 모든 나라에서 노동조합을 노동자의 가장 기본적인 권리로 보장했을 리가 없다.

물론 노동조합은 우선 노동자들에게 유익을 가져다주는 조직이다. 노동자들이 노동조합 깃발 아래 모여 열심 활동해봐야 노동자들에게 별로 도움이 되지 않았다면 근대 인류 역사 속에서 노동조합이 300년 세월 동안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다. 노동조합은 우선 노동자들의 행복한 삶을 위해 복무한다. 그럼에도 노동조합을 전 세계 거의 모든 나라들이 노동자의 가장 기본적인 권리로 보장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노동자들이 자신들의 삶의 질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그 사회 전체가 올바로 발전하는 방향과 일치했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그 방향은 전 인류 사회의 올바른 발전 방향과 일치한다.

독일에서 공부를 마치고 귀국하려고 이삿짐을 싸는 한국 유학생을 하숙집 주인이 부르더란다. 내려가 보니 나이 많은 하숙집 주인이 돈 몇 푼을 주면서 “지금 뉴스를 보니 한국의 어떤 노동조합이 무척 심각한 탄압을 받고 있다고 하더군요. 귀국하거든 이 돈을 그 노동조합 집행부에 전달해 주십시오. 우리 집은 3대째 노동자 집안입니다.”라고 말하더란다. 이러한 장면은 특별히 노동해방 세상을 추구하는 좌경화된 나라에서 빨갱이들이 보여주는 모습이 아니다. 지극히 정상적인 나라의 보통 사람들의 생각인 것이다.

우리 공무원노조가 민주노총에 가입하는 것은 장차 우리 사회가 이렇게 정상적인 사회로 발전하는 데에 도움이 되는 일이다. 민주노총 가입 결단의 판단 기준은 바로 그것이다.

공무원노조의 민주노총 가입에 대한 비판

지난 노동자대회에 공무원노조가 결합했던 것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시각은 예를 들면 이런 생각들이다. “누구를 위한 민주노총가입이며 누구를 위한 집회와 투쟁인가? 집회하고 투쟁해서 단 한 가지라도 우리 조합원에게 실질적인 성과물을 가져다 줄 의지가 지금의 공무원노동조합에게 있는가? 공무원들의 조직인 ○○협의회조차 정부와 교섭하여 자신들의 권익을 실질적으로 찾아가고 있는 것을 직접 보고 듣지 않는가? 너거나 마이 해라 민주노총 가서 뭘 하든지 하나도 신경 안 쓰인다.”

역사를 바로 세우는 일이야말로 눈앞의 고충을 처리하는 것 못지않게 중요한 일인데, 공무원노조법을 올바르게 만드는 일 역시 돈 몇 푼 더 받는 것 못지않게 중요한 일인데, 그런 일들이 공무원을 비롯한 모든 사회 구성원들이 행복하게 살아가는 사회를 건설하는 데에 훨씬 중요한 일일 수도 있는데 그렇게 이해하지 못하도록 제도권 교육과 언론을 통해 ‘국민’을 길들여 온 세월이 무려 100년이니 극복하기 쉽지 않은 것이다. 사회운동의 이론적 토대를 제공한다는 대학교수조차 TV에 나와서 “연봉 8천만 원을 받는 방송사 직원들이 왜 노조 활동을 하는지 이해를 못 하겠어요.”라고 아무런 부끄러움도 없이 외치는 세상이니 공무원들이 노동조합을 사회 정의 실현의 훌륭한 도구라고 인식하는 것이 쉬울 리가 없다. 그러나 노동조합의 진정한 역할이 그것이라는 것은 분명한 진리이고 그것을 지금까지 훌륭하고 보여준 조직이 바로 ‘전국공무원노동조합’이다. 공무원노조가 설립된 이후 우리 공직 사회가 얼마나 달라졌는지 보라.

자주적으로 떳떳하게 독자적으로?

공무원노조의 민주노총 가입에 반대하는 이런 주장도 있다. “공무원노조의 민주노총 가입은 미친 짓이다. 공무원노조가 무엇이 부족해서 여기저기에 빌붙는가? 자주적으로 떳떳하게 독자적으로 나아가라. 연대하고 집회를 해야만 꼭 직성이 풀리는가? 그놈의 연대가 우리나라 망하게 하는 지름길임을 인식했으면...”

그럴 듯한 말로 들리지만 그동안 많은 노동조합들이 집회 장소 하나도 구하지 못하고, 경험이 없는 조직들은 집회 프로그램 하나도 제대로 짜기 어렵고, 각종 행사에 사용하는 방송장비니 천막이니 수많은 물건들을 혼자 힘으로는 해결하기 어려워 쩔쩔맬 때마다 민주노총이라는 전체 조직을 통해 그런 일들을 가능하게 해왔는데, 이런 ‘연대’를 “여기저기 빌붙었다.”고 보는 것은 결코 옳은 시각이 아니다. 더욱이 그런 일을 “그놈의 연대가 우리나라 망하게 하는 지름길”이라고 보는 것은 역사에 대한 잘못된 인식의 표본이다. 오히려 “‘연대’만이 현대 문명사회의 위기를 극복하는 지름길이 될 것”이라는 인식이 세계적인 추세다.

공무원노조와 민주노총이 하나가 되는 것이 왜곡된 100년의 우리나라 역사를 바로 잡고, 부익부 빈익빈의 양극화로 치닫는 세계화의 모순을 극복하는 데에 도움이 될 것인가? 아니면 갈라서는 것이 문명사회의 위기를 극복하는 데에 도움이 될 것인가?

너무 거창한 이야기라 실감이 나지 않는가? 그렇다면 이렇게 생각해도 마찬가지다. 아무 잘못도 없이 밥을 굶어야 하는 수만 명의 결식아동들이 따뜻한 밥을 먹을 수 있는 세상을 건설하는 데에 공무원노조가 민주노총에 가입하는 것이 유익한가? 아니면 갈라서는 것이 유익한가? 판단 기준은 너무나 자명하다. 도저히 그렇게 생각할 수 없다면 역사와 사회에 대한 제한된 지식과 부족한 상상력을 탓할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