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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시간: 2005년12월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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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부부 공무원

진정한 부부 공무원, 자랑스런 공무원 노조 지부장(펌)

강원도의 힘, 노동자의 힘

<우리이웃 17회> 공무원노조 원주시지부 이규삼씨 길경화씨 부부

"명색이 제가 지부장인데 집사람은 파업에 참여하지마라 해놓고, 다른 사람 보고 어떻게 파업하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남편이 지부장이 아니었더라도 파업에 확실히 참여했을 것 같아요. 제가 공무원이고 조합원이니까, 노조 지침에 따라야죠.”

지방행정직 6급 공무원으로 원주시청에서 근무했던 이규삼씨(46)와 길경화씨(35·지방행정직 7급 원주시청 근무)씨는 부부다. 이규삼씨는 전국공무원노조 원주시지부장으로 지난해 파업에서 선봉에 섰다가 파면이 됐다. 길경화씨는 조합원으로 파업에 적극적으로 동참했다가 정직을 당했다.

공무원노조에서 징계자의 생계 문제를 철저히 책임진다고 했지만 ‘철의 노동자’가 아니라 ‘철밥통’ 부부 공무원이 스스로 퇴로를 막고 투쟁에 나서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두 사람은 의식화된 공무원도 아니었다. 오히려 관행과 질서를 중요하게 여기며 공무원 노릇에 '안분자족'하던 이들이었다. 원칙과 책임을 강조하면서도 실제 지키지 않아도 허물이 되지 않는 게 요즘의 ‘운동판’이니, 규삼씨와 경화씨가 외려 신기해 보인다.

11살 차이만 빼면 똑같아

규삼씨와 경화씨는 나이 차이가 많이 나지만 공통점이 많다. 두 사람 다 강원도 시골 출신이다. 규삼씨는 원주시 호저면, 경화씨는 횡성군 갑천면이다. 부모님이 농사를 지으신 것도 똑같다. 규삼씨네 농사는 논 1,300평에 밭 2,000평, 경화씨네는 논은 한평도 없어 남의 논에 농사를 지었고, 밭 3,000평만 있었다. 형제가 많은 것도 같다. 규삼씨는 4남3녀 가운데 3남, 경화씨는 2남5녀 가운데 4녀다. 그러니까 집에서도 '평범'했다는 얘기다.

차이가 나는 점이 있다면 경화씨네는 논이 한평도 없었던 데다, 경화씨의 아버지가 경화씨 13살 때 돌아가셔서 더 가난했다는 것 정도다. 경화씨는 형제들 중에 경화씨의 어머니가 처음으로 고등학교에 보낸 아이였다. 1963년생인 경화씨의 큰오빠가 초등학교만 졸업하고 서울 가서 정비공을 하며 보내 준 돈으로 어머니는 공부 잘했던 경화씨를 고등학교에 보낼 수 있었다.

공무원이 된 동기도 비슷하다. 규삼씨는 고등학교 때 원주시내로 나와 진광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아버지가 편찮으셔서 다시 시골로 가서 농사를 짓고 있었다. 얼마 있지 않아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아버지 뒤를 이어 농사를 지으려니 선뜻 내키지 않고, 다른 일을 하자니 뭘 해야 될지도 모르던 터. 농한기라 방에서 신문을 뒤적이다 지방공무원 공개채용 시험공고를 보고는 응시를 해서는 합격해 공무원의 길로 들어서게 됐다.

경화씨는 면소재지에 있는 갑천고등학교를 우수한 성적으로 다녔지만, 청주사범대학에 시험을 쳤다 낙방을 했다. 집안 형편상 다른 대학은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었다. ‘뭘 해야 되나’ 하고 궁리하던 중에 서울에서 정비공을 하던 큰오빠가 마침 원주에 보험영업 사무실을 차려 놓게 돼 오빠 사무실에 나가 임시로 전화를 받아 주고 있었다. 전화 받고 있은 지 1주일, 사무실에서 일하던 사람이 “공무원 시험 한번 쳐 보지”라고 권했고, 그 말을 듣고 경화씨는 4월에 있었던 공무원시험을 쳤다.

'어이, 이 주사, 소주 한잔 하러 가세'

9급 지방공무원으로 시작한 두 사람, 공무원의 역할과 자세도 비슷했다. 규삼씨는 1982년 화천군청 행정계에서 공직생활을 시작했다. “일도 배우고 재미가 좋았죠. 공무원이 베푸는 입장이다 보니까, 사심 없이 열심히 하면 주민들이 만족하게 되고….” 그런데 어쩌나? 주민들은 공무원이 베푸는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공무원에게 흔히 쏠리는 비난이 “나랏돈을 갖고 왜 공무원이 생색을 내냐”다. 당시로서는 이런 점을 생각할 수 없었던 규삼씨는 어깨에 힘을 살짝 주고는 '대민봉사'에 열중했다.

“수해 났을 때 사무실에서 먹고 자고 하면서 밤낮을 안 가리고 복구사업을 열심히 했는데 그 일이 공무원으로서 보람 있었던 것 같아요.” 수해나 큰 재난이 닥쳤을 때 공무원들의 늑장 대처로 더 큰 피해를 입었다는 얘기가 수해가 날 때마다 되풀이 되는데, 어떻게 우리의 규삼씨는 문제의식을 전혀 느끼지 못했을까. 규정이나 지시가 없이는 움직인다는 것을 생각도 못했다는 규삼씨. “정성을 다해 열심히 했으니까 현장에서 별 문제는 없었어요.”

일이 없어도 사사건건 입바른 소리 하는 일부 주민들 빼고, 순진한 주민들과 순진한 공무원인 규삼씨는 잘 어울려 지냈다. “어이 이 주사~ 소주 한잔 하러 가세.”

▲ 이규삼 지부장이 파업 이후 구속되어 옥중에 있을 때 어머니가 보낸 편지

봉사하고 희생하는 게 공무원이라고 생각한 사람은 규삼씨만 아니라 경화씨도 있었다. 경화씨는 1991년 지방행정서기보 시보로 원주시 우산동사무소로 발령받아 민원업무를 담당했다. “주민등록업무를 맡고 있었는데 관내에 중증장애인이 있었어요. 17살이 돼 주민등록증을 만들어야 되는데 나올 수 없어 방문을 해서 처리를 했죠.” 장애인운동 활동가들이 들으면 동사무소에 중증장애인이 직접 나올 수 있도록 시설을 해야 된다고 생각하겠지만, 거기까지는 생각하지 않았던 경화씨다.

경화씨 공직생활 가운데 가장 뿌듯했던 일은 1992년 원주시청 세무과에서 근무할 때, 법무사사무소에서 등록세 업무를 대행하면서 탈루를 했던 것을 찾아냈던 일이라고 한다. 법원 자료와 은행 자료를 대조작업을 하던 중 탈루한 400건을 찾아내 5,000만원을 추징을 했다. “내가 맡은 일이니까 끝까지 책임을 져야된다는 생각에 챙기게 된 거죠. 그런데 진짜 깜짝 놀랐어요. 국고인 세금을 갖고 이렇게 장난을 칠 수 있을까?”

경화씨의 확실한 일 처리 덕분에 인천 북구청 세무 비리 사건으로 전국의 시청, 군청이 감사를 받았을 때, 원주시청은 별탈 없이 무사히 넘어가게 되었다고 한다.

"저도 구두티켓 받았어요"

규삼씨가 공무원 생활을 시작한 때는 1982년이다. 공무원은 ‘정권의 시종’이라고 할 정도였고, 공무원의 부정부패도 많은 시절이었다. “86년부터 개헌 논의가 있었잖아요. 87년 4월에 호헌 발표를 했고, 우리(공무원)는 개헌할 필요 없다고 주민들 설득하러 다녔어요. 이때는 문제가 있다는 생각을 조금 하기는 했는데 위에서 시키는 것이니까 무조건 했죠.” 규삼씨는 상사의 명령에 반기를 드는 건 생각해 보지도 않았다고 한다.

1991년에 공무원이 된 경화씨는 이런 '곤란한' 문제에 부딪히지는 않았다. 오히려 경화씨가 상사에게 문제제기를 한 적도 있다. 경화씨가 예산 업무를 담당할 때, 동사무소 화장실 보수를 위해 예산을 편성을 해놓았는데 동사무소의 높으신 분이 새 차를 구입하면서 주차장을 마련한다고 화장실 보수비용을 없애 달라는 상사의 요청이 있었다. 경화씨는 그렇게는 못한다고 했고, 얼마 있지 않아 업무를 변경하라는 지시가 떨어졌다고 한다. 경화씨는 부당한 줄 모르는 바 아니었지만, '내가 반대하니 날 옮기나보다'며 그대로 따랐다.

공무원의 부정부패 문제에 있어서 규삼씨는 자유롭지 못하다. 부서의 장이 업체에서 돈을 받아 직원들에게 나눠주는 경우, 규삼씨도 받았다. “대개 공무원이 되면 처음에는 주민들에게 봉사한다는 자세로 열심히 하는데, 한 10년쯤 되면 공무원 할만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깨에 힘도 들어가고, 이러다 보면 민원인들에게는 고압적으로 보이는 거죠. 부정을 저지를 만한 능력(?)도 갖게 되고….” 어쨌거나 규삼씨가 받은 최고의 '뇌물'은 10만원짜리 구두 티켓. 부서에서 나눠가질 때 규삼씨도 덩달아 받았다.

경화씨는 여성공무원으로서 부당한 대우를 받는다고 느껴 본적이 없을까? 경화씨는 중요한 업무는 남성공무원에게 돌아가고, 승진에서 여성이라서 차별을 받는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고 한다. “내근직을 많이 하기는 했는데, 여자라서 그렇다는 생각은 못했어요. 제가 애들 키우느라 직장 일에 신경을 못 써서 의식을 못했을까요?” 되물어보는 경화씨.

'인기투표'로 지부장 되다

▲ 이규삼 지부장의 석방환영식 ⓒ 매일노동뉴스

공무원으로 일하면서 문제의식을 갖지 않았던 두 사람이다. 진급도 무난하게 한 편이다. 규삼씨는 만 9년만인 1991년 7급으로, 만 19년만인 2001년 6급으로 진급했다. 경화씨는 만 8년만인 1999년 7급으로 올랐다. 별 탈 없이 공직 생활을 해 나갔을 규삼씨가 어쩌다 공무원노조, 그것도 파업의 총대를 메게 되었을까?

2000년 원주시 직장협의회가 생겼다. 원주시 직장협의회는 창립총회 자리 당일 그 자리에서 회원 투표로 지도부를 선출했다. '사전모의'나 '조정'도 없이. 다른 지역의 경우 대개 협의회 준비위가 지도부로 추대되거나 투표로 결정됐다고 한다. 직장협의회 준비위도 아니었고, 관심조차 없었던 규삼씨였다. 가까이 지내던 동료가 가자고 해서 창립 총회 자리에 갔고, 그만 부회장으로 덜렁 선출됐다. “일종의 인기투표였죠 뭐.” 규삼씨 뿐만 아니라 경화씨, 원주시지부 공무원 노조 간부들의 증언도 같다. 규삼씨는 하기 싫은 일을 스스로 맡아하고 조직을 생각해서 동료들을 챙기는 편이라고 한다.

부회장으로 선출된 규삼씨는 직장협의회를 통해 근무여건 정도는 개선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실제 그렇게 됐다. 해마다 봄이면 산불 감시 업무로 매일 산으로 출근하고 밤에 사무실 업무를 봐야 해야 했는데, 직장협의회에서 회원 의견 설문 조사를 바탕으로 시에 요구해 격일로 산에 가서 하는 산불 감시 업무를 하게 됐다. 토요일과 일요일에 산불 감시를 하면 수당을 받고, 산불감시 집중기간이 끝나면 공로 휴가를 갈 수도 있게 됐다. 인사 문제에 있어서도 다면평가제를 도입해 인사위원회에 참관, 구래의 전횡을 막을 수도 있게 됐다.

2001년 전국직장협의회 총회가 서울대에서 열렸을 때 규삼씨도 참가했다. 당시 강원도 공무원으로 참여한 협의회 회원은 규삼씨를 포함해 2명뿐. 원주시 직장협의회 총립총회 때 같이 가자고 했던 동료가 전국총회 자리에도 가자고 했다. 이 동료는 규삼씨와 같은 6급공무원으로 이전부터 이런(?) 데 관심이 많았다고 한다. 규삼씨는 겁도 나고 ‘왜 이런 것을 해야 되나’하며 저항감을 느끼기도 했지만, ‘부회장이라는 직책을 맡았으니 이런 과정도 이겨 나가야 된다’고 생각해 따라갔다.

2001년 경남 창원에서 전국공무원노동자대회가 열렸다. 이때도 강원도에서 참여했던 공무원 노동자는 규삼씨를 포함해 역시 2명뿐이었다. 이날 대회는 건국 이래 처음으로 공무원이 공개적으로 노동권을 주장한 첫 대규모 집회였다. 전국 각지에서 몰려온 3,000여명의 공무원을 보고는 규삼씨는 전국직장협의회 창립총회 때와는 달리 머리가 번쩍 들렸다. “아, 이런 거구나. 공무원도 단체행동 할 수 있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부산에 열린 공무원집회 때 원주에서만 7명, 강원도 전체에서는 45명의 공무원 회원들이 참여했다.

"공무원도 노동자다"

2002년 직장협의회가 노조로 전환하면서 시와 갈등이 생기기 시작했다. 김기열 시장이 노조를 인정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도 큰 갈등 없이 지내왔는데 2003년 단체교섭을 하면서 갈등이 본격적으로 나타났다. 단체교섭 자리에서 노사로 시장 대 지부장으로 마주 앉았는데, 노조를 인정하지 않는 김기열시장은 “이 XX야 나가. 니가 나하고 똑같아!”라고 소리를 지르며 지부장인 규삼씨에게 필통을 집어던졌다. 원주시지부는 1인시위를 벌이고, 원주시장의 태도를 규탄하는 현수막을 내걸고 행동에 들어갔다. 이러기를 한달, 시장이 공식적으로 사과를 하는 것으로 마무리 됐다. 필통 사건(?)은 규삼씨를 비롯한 원주시 공무원들의 투쟁의지를 고취시켜 처음으로 현장에서 행동으로 나서게 했다. 고마운 시장님이다.

한편, 공무원노조로 전환하면서 집중적으로 이루어진 전국 단위의 교육과 수련회를 통해 규삼씨는 '노동자성'에 대해 인식하게 되고 두려움을 차차 떨쳐 나갔다. 한울노동문제연구소 하종강 소장, 노동자교육센터 김진순 대표, 사이버노동대학의 김승호 학장 등 노동교육강의는 ‘공무원도 노동자다’라고 생각하게 해주었고, 전교조 선생님의 투쟁 사례는 용기를 심어주기에 충분했다.

이리하여, 지난해 원주시지부를 위시한 공무원노조 강원도본부는 파업의 선봉에 섰고, 전국 최고 수위의 탄압(원주시지부 소속 공무원 파면·해임 20명)으로 2000년부터 차곡차곡 쌓아 올린 이 모든 것이 흔들리고, 간부들마저 흩어지게 됐다. 규삼씨는 옥중에서 10여일 동안 단식 투쟁을 했다. 징계 결과가 나오면서 간부들이 다시 결집하게 되었지만, 노조를 인정하지 않는 김기열 시장은 이번에는 노조 사무실을 강제 폐쇄해 버렸다.

“아, 그 말이 맞구나. 피를 흘려 쟁취해야 진짜 우리 것이 되는구나.” 규삼씨와 원주시지부는 노조사무실 탈환투쟁에 돌입했다. 시청 앞 광장에서 천막농성으로 시작해, 집회, 지역공대위 구성, 노숙쟁을 그야말로 가열차게 진행했다. 상대도 만만찮았다. 천막이 철거되기 세 차례. 한 지부의 투쟁이 전국적인 관심을 받을 정도로 '명승부'를 벌인 결과, 지난 7월 드디어 노조 사무실을 투쟁으로 확보했다.

중앙 단위의 투쟁과 함께 하면서 지부 차원에서는 공직협 시절 어렵지 않게 확보한 것들이 파업 이후 무위로 돌아간 것을 복원시켜야 하는 일이 남았다. 산불감시업무는 상황실 근무를 하게 되어 직접 산에는 가지 않지만 낮 동안 꼼짝없이 매달려야 하게 됐고, 인사다면평가제는 사라져 버렸다.

앞으로 현장에서 펼쳐 나가야 투쟁들은 노조사무실 탈환보다 더 어려울 게다. “지금도 여전히 두렵고, 어떻게 하면 피 흘리지 않고 얻을 수 있는 방법이 없는지를 찾는다”는 규삼씨이지만, “그동안 믿고 따라준 조합원들에게 빼앗긴 것을 돌려줘야 된다”는 생각을 확실히 하고 있기에 웬만한 탄압에 물러서지는 않을 것이다.

"정권이 공무원 마음대로 부려먹기 위해 노동자성 인정하지 않는대"

창립총회 자리에서 우연찮게 지도부를 맡게 돼 공무원노조 일을 하게 되었다고 하지만, 규삼씨 곁에는 먼저 의식화된 동료 공무원이 있었다. 서울, 창원, 부산 전국 집회를 같이 다니면서 많은 얘기를 나누면서 “이렇게 까지 해야 하나” 되뇌이는 규삼씨를 “이왕 하는 거 제대로 하자”고 '바람'을 넣은 고맙고 두려운 친구다.

남편이 지부장만 아니라면 노조 간부가 되어 열심히 했을 경화씨 곁에는 남편이지만 선배이자 동료인 규삼씨가 있었다. 규삼씨가 공무원 노조교육을 갔다 와서는 경화씨에게 도란도란 보고를 한다. “정권이 공무원을 마음대로 부려먹기 위해 노동자성을 인정을 하지 않고 있는데…” 이런저런 얘기가 실은 부부 사이에 진행되는 '의식화 교육'이다.

이제까지 규삼씨와 경화씨는 공무원노조 설립, 노동3권 쟁취를 위한 총파업 등 기본적인 대의를 따라 원칙을 지키며 책임감 있게 행동했다. 앞으로는 ‘누가 잘하나, 어떻게 해야 잘 되나’를 놓고 조금씩 갈라지고, 그 만큼 더 발전될 것이다.

공무원노조 가운데에서도 가장 세다는 강원도본부. 이 강원도의 힘은 ‘노동자의 힘’과 관련이 있다는 소문이 있다. 참, 이런 게 왜 소문이 되나. 공무원 더 잘하려고, 노동운동 더 열심히 하려고 '노동자의 힘'이라는 정파와 가까와진 것일 텐데. 그리고 소문이 아니라 사실이 돼도 시원치 않을 텐데.

곧 있을 공무원노조 지도부 선거에 출마 예정인 권승복 부정부패추방위원장 역시 노동자의 힘과 관련이 있다는 소문이다. 하지만 규삼씨는 부정했다. “원주시지부에는 정파가 아직 없다. 저변에 깔려 있기는 한데….” 정파가 있다는 게 나쁜 게 아니다.

어찌 보면, 공무원들이 정파까지 가질 정도로 '의식화' 됐다는 이야기 아닌가. 규삼씨는 권승복 부정부패추방위원장을 좋게 평가한다. “우선 인성이 돼 있고 선도적인 투쟁역량을 갖고 있다.” 그리고 규삼씨는 다가올 공무원노조 선거에서 원주시지부 출신인 권승복 부정부패추방위원장을 지지 할 것을 부인하지 않았다.

아무튼. '호구지책'으로 공무원이 됐던 규삼씨와 경화씨. 그러면서 '대민봉사'에 자신이 노동자라는 사실을 잊고 있었던 규삼씨와 경화씨. 이 부부가 이제 진짜 노동자가 됐다. 이리하여 이 나라는 더 좋은 세상을 향해 한발 더 내딛게 된 것이다.

규삼씨와 경화씨는 1993년 결혼했다. 규삼씨가 공직 생활 9년만에 7급으로 진급하여 화천군청에서 원주시내 우산동 사무소 발령 받아 왔을 때, 이 동사무소에 공무원이 된 지 5개월째 되는 경화씨가 근무하고 있었다. 경화씨는 처음에 규삼씨가 결혼을 해서 애가 둘 정도는 있는 아저씨인 줄 알았다고 한다.

인연이 시작되는 날은 항상 '어느날'이다. 어느날, 경화씨가 동사무소 서류 캐비넷 열쇠를 찾고 있는데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는 게다. 열쇠를 찾아주는 사람에게 저녁을 사겠다고 했는데 규삼씨가 ‘짠’ 하고 열쇠를 들고 나타난 것. ‘작업’은 아니었다는데 알 수 없는 일이다. 이리하여 저녁을 먹고 얘기를 나눴고, 정이 들게 됐다. 이때가 규삼씨 32세, 경화씨 21세. 11년 차이가 나는데 무슨 얘기가 됐을까.

경화씨의 별명은 '애늙은이'. 조숙해서 이미 세상살이를 오래한 아저씨 같은 총각과도 얘기가 잘 통했던 것. 경화씨는 조직 내에서 궂은일을 피하지 않고, 조직 간의 인화를 중요시 여겨 동료들을 두루두루 챙기는 규삼씨가 마음에 들었다고 한다. 규삼씨는 설명이 필요하지 않을 것 같다.

두 사람은 1,600만원으로 전셋집을 구했다. 이 돈은 규삼씨가 구해 왔지만 일부는 큰 형님에게 빌려 온 것으로 이후에 파악됐다는 게 경화씨의 전언이다. 10년 공무원으로 일 했으면서도 모은 돈이 거의 없었던 규삼씨. 최대한 간소하게 하자고 해서 경화씨는 규삼씨에게 양복 한벌, 규삼씨는 경화씨에게 시계, 목걸이, 반지를 선물했다고 한다. 경화씨는 최소한의 패물도 필요하지 않다고 했지만 ‘그래도 신부인데’ 하시는 시집 어른들의 배려였다. 결혼식장은 교회에서 해서 돈이 들지 않았다. 결혼식에 쓴 돈은 기백만원 정도.

1994년 도현이가 태어나고, 다음해 태현이가 태어났다. 경화씨는 2개월 육아휴가가 끝난 뒤 바로 직장생활을 그대로 해 나갔다. 아이들 양육비로 든 돈은 한 달에 40만원. 이 돈은 큰 아이가 초등학교 들어갈 때 까지 7년 동안 들었다. 아이를 맡아 주시는 분 댁에서 아이들을 출퇴근 하면서 데려다 주고 오는 것이 보통 일이 아니라 94년 250만원 주고 중고 티코를 구입했다.

1999년 5,750만원을 주고 24평 아파트를 샀다. 3천만원은 은행에서 대출을 받았다. 얼마 전 그 대출금을 다 갚았다. 이제 한 시름 덜고 살만하다 싶었다고 한다. 공무원노조 일만 아니라면 안정을 일궈가던 집안이었다. 그러나 이 부부는 안정보다 더 큰 희망을 안고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