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 공무원제란 '젊고 유능한 인재가 공직에 들어와서 공직을 일생의 본업으로 삼을 수 있게 하는 제도' 이다.
유럽국가들에서는 이 직업 공무원제가 일찍 정착하였다. 그에 비해 미국에서는 늦게 정착하였을 뿐 아니라 약한 편이다. 한국은 어떠한가? 98%가 경력직 공무원인 만큼 매우 강력한 직업 공무원제를 시행하고 있다.
직업 공무원제가 어떤 것인지 이해가 잘 되지 않는다면 다음과 같이 생각해보자.
20대 청년이 7급 공무원 시험을 봐서 합격했다. 몇년 동안 열심히 근무를 하여 승진시험을 볼 기회가 생겼다. 그런 식으로 수십년이 흘러 그 청년은 4급까지 올랐다. 그리고 몇년 뒤 정년을 맞이하여 노인이 된 청년은 공직을 은퇴하고 연금을 받으면 편안한 여생을 보낸다.
젊은 나이에 공직에 들어온다. 왜 젊어야 하냐며 따질 수 있겠지만 보다시피 처음에는 낮은 직급에서부터 시작하게 된다. 근무를 하면서 연수가 지나서이던 승진시험을 통과해서이던 각 직급을 차근차근 밟아 나가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공무원 시험에는 연령제한이 붙게 된다.
또한 직업 공무원제는 공무원의 정년을 보장해준다. 매우 강력한 신분보장을 해주는 것이다. 강력한 신분보장을 하는 이유는 유능한 인재를 확보하기 위해서이다. 정부의 재정에는 한계가 있다. 민간 기업에서처럼 유능한 사람을 비싼값을 부르고 가져다 쓰기 어려운 것이다. 대신에 정년보장을 해줌으로 사람을 끌어들이는 것이다.
공무원의 월급이 뭐가 적냐고 항의하는 분들이 있을 줄로 안다. 그러나 현재 공무원의 월급 수준은 중견기업(대기업 제외)과 비교하여 70~80% 수준이다. 많은 양은 아니다. 이를 두고도 몇가지 비난이 나올 것이라 예상되어 짧은 설명을 하도록 하겠다.
우선 동사무소를 가보면 하는일 없이 빈둥빈둥거리는데 그정도면 월급이 너무 많은 것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올 수 있다. 그러나 동사무소 직원만이 공무원은 아니다. 업무량이 과다한 부서들도 많다. 또한 중요한 국가 정책을 수립하고 관리하는 곳에서는 유능한 인재가 절실하다.
또 이런 이야기도 있을 것이다. 많은 비정규직들이 한달에 100만원도 안되는 돈을 받고 있는데 적기는 뭐가 적냐고 말이다. 그럼 직원 공무원제가 약한 미국은 공무원들의 월급이 어느정도 될까? 미국은 중요한 직책들을 민간기업에서 업무능력이 좋은 사람들을 데려다 쓴다. 이런 사람들은 한국의 공무원들은 상상도 못할 액수를 준다. 민간기업 수준의 대우를 해줘야 하기 때문이다.
현재 한국의 상황은 고용이 매우 불안정하기 때문에 신분보장과 연금제도가 매우 큰 장점이 되고는 있다. 고급인력이 수백대 일의 경쟁률 속에서도 공무원 시험에 응시하고 있으니 말이다. 이를 두고 배가 아프다며 신분보장을 낮추고 연금 수준을 낮추라고 한다면 공직에 유능한 인재를 확보하기 위해서 직무에 따라서 더 많은 월급을 줘야한다. 한국에서도 민간에서 인재를 끌어쓰기 위해 개방형 직위제를 시행했지만 일반공무원보다 더 많은 봉급을 줌에도 불구하고 큰 호응을 얻고 있지는 못하듯 말이다.
미국과 같이 직업공무원제가 약한 나라들에서도 공무원들은 상대적으로 안정적이다. 이는 유능한 공무원을 안정적으로 확보하기 위해서는 신분보장을 해줘야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게으르고도 자리보전하는 공무원의 무사안일은 피할 수 없는 것인가?
신분보장을 한다고 해서 바로 공무원이 무사안일하게 되는 것은 아니다. 공무원에게 있어서 중요한건 단순한 자리 보전이 아니다. 조직내에서의 자신의 입지나 승진 등과 같은 것이 매우 중요하다.
현재의 공무원에 대한 평가는 그 사람이 얼마나 일을 잘했느냐보다 그 사람이 얼마나 법적인 문제를 발생시키지 않았느냐가 중요하다.
공무원의 권한 남용에 대한 경계를 위해 공무원의 행동은 많은 법적인 제약에 묶여있다. 이런 현상은 한국만이 아니라 관료제를 운용하는 대부분의 국가들에서 나타난다. 외국의 문학작품들에서도 각종 서류와 도장을 요구하는 관료에 대한 비꼼이 등장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지나친 규제는 업무능력을 저해하기 때문에 많은 국가들에서 이에 대한 해결책을 마련하고 있다. 절차 간소화와 공무원의 재량권 증대이다. 그러나 이게 말처럼 간단한 것은 아니다.
공무원의 업무가 잘되고 있는건지 아닌지에 대한 평가기준이 불명확하기 때문이다.
평가기준이 불명확하다보니 공무원에 대한 평가가 비교적 명확하게 들어나는 법적 문제 발생 여부에 많은 초점이 맞춰지게 된다. 그리고 이런 행태가 신분보장과 결합함에 따라 공무원의 구태의연함을 증가시키고 있다.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정리해보면
강력한 신분보장이 공무원의 무사안일을 유발하는 나쁜 것만은 아니다.
그리고 공무원의 밥통을 철밥통에서 스티로폼밥통으로 바꾼다고 바로 공무원이 유능해지는 것은 아니다.
다음 편에서는 우리가 보통 공무원이 무능하게 된다고 생각하는 철밥통 문제가 아닌 다른 문제들을 살펴봄으로서 공무원의 철밥통만 탓하는 견해에서 벗어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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