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새누리당 중앙선거대책위원장이 총선 지원을 위해 전국을 누비며 가장 많이 언급하는 단어는 바로 ‘국익’이 아닐까 싶다. 그는 야당이 “국익을 버리고 나라를 혼란으로 몰아가고 있다”고 비판한다. 노무현 정부 때 ‘국익’을 위해 추진했던 한·미 FTA, 제주 해군기지 건설도 모두 폐기하는 ‘말바꾸기 세력’이라며 야당을 맹렬히 공격하고 있다. 그러면서 그는 이 사업들은 ‘국익’을 위해 반드시 추진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박근혜 위원장의 ‘국익론’에는 심각한 문제가 있다. 국익을 주장하며 ‘국민’을 외면한다는 점이다. 노무현 정부가 한·미 FTA와 제주 해군기지 건설을 추진한 배경에는 분명 국익이 존재한다. 그러나 이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국민들의 반발과 고통을 도저히 외면할 수 없었기에 재논의하자고 나서기에 이른 것이다.
특히 이들 정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희생자는 모두 사회 주변부에 위치한 사람들이다. 사회경제적 변방에 위치한 서민, 자영업자, 농어민, 축산업자와 지리적 변방인 제주도민들의 삶이 위협을 받는 것이다. ‘민생’과 ‘경제민주화’를 외치면서 이들 정책을 오직 ‘국익’을 위해 밀어붙이는 것은 한마디로 논리모순이요, 자가당착이다. 무엇보다 약자 보호를 ‘이념 투쟁’으로 몰아붙이는 용감함의 출처가 궁금하다.
‘국가의 이익’을 뜻하는 국익의 개념에 대해서는 많은 논란이 있어 왔다. ‘국익’의 객관적 정의가 불가능하기도 하지만, 사회구성원들의 출신 배경이나 입장에 따라 한쪽의 이익이 다른 쪽엔 피해로 돌변하기도 한다. 특히 국익은 일반적으로 국가의 외교정책 차원에서 사용되어 왔는데 이것이 정치인들에 의해 활용될 때 문제가 발생한다. 국익이 정치인들에 의해 자기 정당화의 수단으로 활용되기도 하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가 그 수많은 공약들을 파죽지세로 뒤엎으며 내세웠던 논리도 바로 국익 아니던가.
한국 사회에서 국익은 대단히 예민한 개념이고 정치적 공격무기로 자주 활용되기도 한다. 그런데 사실 그 활용은 굉장히 저급하면서도 헷갈린다. 이제까지 박 위원장은 이명박 정부가 ‘국익’을 내세워 ‘국민’과의 약속을 계속 뒤집을 때 묵묵부답으로 일관했다. 그런데 총선 국면이 되자 자신도 ‘국익’을 외친다. 또 있다. 지금의 집권여당은 노무현 정부의 모든 것을 반대하는 ‘ABR(Anything But Rho)’를 표방했다. 그런데 노무현 정부가 추진했던 사업을 그 계승자들이 뒤집었는데도 박 위원장은 다시 국익을 내세워 이를 계속 추진해야 한다고 나선 것이다. 혹시 박근혜야말로 ‘노무현 정신’의 진정한 계승자가 아닐까.
박 위원장의 국익론이 위험천만한 이유는 또 있다. 그는 지난달 13일 필자도 패널로 참여했던 한 TV토론에서 “산업화 과정에서 본의 아니게 피해를 입으신 분들에 대해서 저는 항상 죄송한 마음을 가져왔”고, 그래서 “그분들께 제가 사과를 드린다”고 말했다. 말뿐인 사과라는 비판도 있었고, 수많은 고문과 살인이 행해졌던 유신독재를 ‘산업화’로 미화한 그의 발언에 논란이 일기도 했다.
필자가 섬뜩한 느낌을 받은 점은 박정희의 독재 역시 ‘국익’의 깃발 아래 자행됐다는 이유 때문이다. 국익의 기치 아래 거침없이 행해졌던 박정희의 독재. 사과를 하면서 다시 국익의 깃발을 꺼내드는 박근혜 위원장. 국익을 주장하며 국민의 고통을 외면하는 박 위원장에게서 나는 박정희를, 그리고 1970년대를 보게 된다. 그는 지금도 강정마을 주민들의 눈물과 제주도민들의 반대에도, 우리나라 국민의 절반이 넘는 서민과 농축산인의 원성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오직 국익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국익’과 ‘국민’은 양자택일의 문제가 아니다. 모두 중요하다. 그러나 박근혜 위원장의 국익에 국민은 보이지 않는다. 국익을 위해 국민이 희생되어도 괜찮은 것인가. 그의 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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