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부처 선임 과장인 K씨는 요즘 모처럼 찾아온 기회인 국외파견 근무를 포기할지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다.
지난해 초 부이사관(3급)으로 승진한 K씨는 외국에서 2~3년 근무한 후 귀국하면 국 장 보직을 받을 것으로 생각하고 국제기구 파견근무를 지원했던 것. K씨는 현재 국외파견 후보 영(0)순위로 국제기구에 결원이 생기면 곧바로 파견될 예정이다.
그런데 오는 7월 시행될 고위공무원단 제도 윤곽이 드러나면서 사정이 달라졌다.
K씨는 국장급이면서도 보직이 없어 고위공무원단에 포함되지 않아 귀국 후 다시 국 장급 업무능력을 수행할 수 있는지 까다로운 심사절차를 밟아야 한다.
지금 국외파견 근무를 나갔다간 귀국 후에 자칫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될 수도 있는 셈이다. K씨는 "7월 이전에 한직이라도 국장 자리만 잡을 수 있다면 국외근무 기회는 포기할 것"이라고 말했다.
참여정부가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핵심정책과 관련해 실무책임을 맡고 있던 C과장( 부이사관)도 올 초 갑자기 국방대학원 교육을 선택했다.
웬만 하면 자리를 옮길 상황이 아니었지만 국방대학원 교육을 받으면 국장보직이 없더라도 고위공무원단에 자동 편입되기 때문에 미련없이 업무보다 미래를 택했다.
외국에 파견근무하고 있거나 국ㆍ과장급 인사교류로 다른 부처에 파견나가 있는 공 무원들은 그야말로 좌불안석이다.
파견 또는 교류근무 후 돌아갈 것으로 예상됐던 자리가 공모직으로 결정되면 민간 또는 다른 부처 공무원들과 치열한 경합을 해야 할 처지가 된다.
이런 사정 때문에 외국에서 근무하고 있는 선임 과장급이나 국장급 공무원들은 국 내 소식을 파악하는 데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부처간 교류로 다른 부처에 파견나온 공무원들도 7월 이전에 귀환하겠다는 의사를 타진하는 사례가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7월 고위공무원단 제도 시행을 앞두고 공직사회가 크게 동요하고 있다.
실제 관가에는 요즘 일손을 놓고 어떤 자리가 공모직이 될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공무원이 적지 않다.
고위공무원제는 1ㆍ2ㆍ3급 전체 공무원을 인력풀로 형성해 부처별로 실ㆍ국장 자리 중 50%만 해당 부처 공무원으로 배치하고, 30%는 다른 부처 직원과 경쟁을 통해 공 모를 하고, 20%는 민간 전문가에게까지 공모 대상을 개방하는 제도다.
각 부처는 실ㆍ국장 자리 중 절반만 유지하고 나머지는 공모대상으로 내놔야 한다.
바꿔 말해 현재 실ㆍ국장 중 절반은 부처 내는 물론 다른 부처 공무원, 심지어 민 간 전문가와 경쟁해 이겨야 자리를 유지할 수 있다.
이러다 보니 벌써부터 관가에는 '살아남기' 작업이 한창이다.
특히 고위 공무원 편입 여부에 사활이 걸린 선임 과장급은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7월 이후 제도가 바뀐 뒤 국장으로 승진하려면 3개월 동안 후보자양성과정을 이수 한 후 역량평가제 심사를 통과해야 한다.
중앙인사위에서 리더십, 의사전달 능력 등 9개 항목에 걸쳐 국장 수행능력을 평가 해 이에 미달하면 승진대상에서 제외된다.
일부 선임 과장들은 "지금 아니면 영영 승진 기회가 없다"며 7월 이전에 국장 자리 를 차지하는 데 모든 것을 걸겠다는 움직임이다.
모 부처 C국장은 선임 과장급보다 더 난처한 상황이다. 현재 일하고 있는 자리가 직제상에는 정직 국장 자리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대로 있다가는 보직 승진 기회를 노리는 선임 과장보다 고위공무원제에 편입이 늦어져 낙오될 수도 있다.
고위공무원 편입이 확정된 국장급들도 긴장하기는 마찬가지다.
동기들보다 승진이 2년 늦었던 모 부처 B국장은 지금 맡고 있는 자리가 한직이어서 고위공무원제가 실시되면 '시장'에 매물로 나올 가능성이 높아 걱정이다. 공모직이 나 개방직이 되더라도 결원이 생긴 후에 공모를 하기 때문에 당장 자리에서 쫓겨나 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당장 6개월 후조차 장담할 수 있는 처지가 못 되기 때문 이다.
모 국장은 "이젠 끝이라고 생각하니 의욕도 떨어져 민간기업 자리나 기웃거려야 할 형편"이라고 어려운 속내를 털어놨다.
요직을 맡고 있는 국장급도 해당 부처에 계속 남을 수 있을지 장래가 보장되지 않 는다. 한직뿐만 아니라 핵심 국장 자리도 일부는 공모 또는 개방직으로 뽑는다는 중앙인사위원회 방침이 서 있기 때문이다.
국장 A씨는 "부처간 인사교류 때는 그나마 돌아올 수 있다는 희망이 있었지만 새로 운 제도는 그렇지 않다"며 "다른 부처로 밀려난다면 1~2년 더 근무하는 것보다 공 무원을 그만둬야 할 것 같다"고 토로했다.
제도 시행에 맞춰 각 부처는 공모대상 자리를 선정해 중앙인사위원회에 통보해야 한다. 이달 안에 부처 내부결정을 거쳐 4~5월께 중앙인사위와 협의한 후 늦어도 5 월 말까지는 공모직과 개방직 자리를 확정해야 한다.
이 때문에 일부 부처는 시장에 내놓을 인물과 지킬 인물에 대한 옥석을 사전에 고 르기 위해 5~6월께 대대적인 국장급 인사도 고려하고 있다.
같은 국장 중에서도 부처에 따라 명암이 엇갈리고 있다.
경제 혹은 기획관련 부처 출신에 대해서는 다른 부에서도 수요가 많을 것으로 예상 된다.
반면 전문화한 부처는 다른 곳에서 능력을 발휘할 만한 자리를 찾기가 쉽지 않다.
한 사회관련 부처 국장은 "20년 이상 유사한 업무만 해왔는데 전혀 생소한 부처에 가서 적응하기도 힘들 것 같다. 이번 제도는 소위 잘나가는 부처 공무원만 수혜를 보는 게 아니냐"며 볼멘소리를 했다.
특정 부처 공무원에 대한 편중현상이 나타나면 중앙인사위가 직권으로 조정권을 행 사할 수 있지만 부처간 어느 정도 명암은 불가피할 것으로 관가에서는 내다보고 있 다.
선임 과장급 이상 간부직원들이 이처럼 동요하다 보니 아직 갈길이 먼 사무관과 서 기관 등도 마음이 편하지 않다.
경제부처 서기관 S씨는 "예전에는 20년 앞을 생각하며 옆을 돌아보지 않고 열심히 공직생활을 할 수 있었는데 앞으로는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며 "효율을 높이는 것 도 좋지만 지나친 실험인사는 공직사회 기강을 흔들 수 있다"고 걱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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