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대구·경북지역에서 아파트를 분양한 중견 건설업체 A사의 임원 ㄱ씨에게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이 지역의 기자단 간사는 대뜸 “골프나 한 번 치러 오라”는 말을 던졌다. 건설사 임원이 이 말의 의미를 모를 리 없었다.
이 임원은 기자단 간사와 약속시간과 장소를 정하고 출장을 떠나야 했다. 대구에 미리 도착한 이 임원은 아래 직원을 시켜 지역 백화점에서 기자들에게 나눠줄 상품권을 구입했다. 기자 한 명당 50만 원씩을 배정했다. 기자단 간사가 “상품권 한두 장씩은 줘야 하는 거 아니냐”는 말을 넌지시 던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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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 아파트 단지 건설 현장(본 기사와 관련은 없습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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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임원은 모든 준비가 끝난 후 약속 장소인 골프장으로 향했다. 지역 신문·방송사 기자들과의 골프 운동은 식사와 술자리로 이어졌다. 그 사이 광고 게재와 호재성 분양기사를 써달라는 청탁이 서로 오고갔고, 상품권이 담긴 봉투는 어느새 기자들의 안주머니에 꽂혔다.
▷기자단 간사 “골프나 치시죠”= A 건설사 임원이 한 모임에서 밝힌 내용이다. 건설사 임원들은 자신들이 겪은 일을 털어놓고 정보를 교류하곤 한다. 당시 모임에 참석했던 B사 임원은 A사 뿐 아니라 상당수 건설사가 겪는 일이라고 설명했다.
충청지역에서 아파트를 분양한 경험이 있는 이 임원은 “기자단 간사가 술 한잔 사라고 해서 내려갔더니 ‘기름값이 올라 차 끌고 다니기 힘들다’면서 주유 상품권을 달라고 유도하더라”며 “주중에 골프 운동을 하고 술 한잔하면서 상품권 3장(30만 원)을 돌렸다”고 말했다.
이 임원은 “건설업계에서는 대구와 청주, 수도권에서는 구리·수원·화성이 ‘위험지역’으로 꼽힌다”며 “한 번 내려가면 돈 버리고 몸 버리고 2∼3일 동안 일도 못한다”고 하소연했다.
건설사와 지역 언론에 대한 사회적인 감시가 소홀한 틈을 이용해 아직도 대가성 있는 ‘뇌물’이 활개를 치고 있는 것이다.
▷ “알아서 나눠라” 광고비 맡기기도 = 지역 기자들의 윤리불감증이 어느 수준인지 보여주는 다른 사례도 있다.
지난해 말 경기도 지역에서 아파트를 분양한 C사는 기자단 간사에게 수천만 원의 광고비를 통째 쥐어줬다. 20여개 신문사 기자들을 상대하기 벅찰 때에는 기자단 간사에게 광고배정을 맡기는 일이 종종 있다.
광고비 배정에 불만을 품은 기자들이 자신들에게 시비를 걸지 못하도록 아예 모든 결정을 기자단에게 맡기는 것이다.
이렇게 받은 광고비는 기자단 회의를 거쳐 사별로 100여만 원에서 많게는 500여만 원까지 할당된다. 이 지역에서 분양광고를 대행했던 한 광고대행사 고위 관계자는 “지역신문 중에서도 메이저와 마이너가 있는데, 마이너로 내려갈수록 기자들이 기사와 광고유치를 병행한다”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지역 기자들에게 분양을 앞두고 30만∼50만 원씩 촌지를 주는 것이 관행처럼 돼 있다”는 말도 덧붙였다.
건설사들은 광고 뿐 아니라 구독확장도 강요당하기 일쑤다. 각종 전집류나 테이프는 물론이고 구독 확장비 명목으로 세금계산서도 발행하지 않는 돈을 수백만 원씩 뜯기기도 한다. 일부 건설사 홍보실은 현장소장에게 “방송이나 신문사 기자들이 오면 상대하지 말고 홍보실로 연락하라”는 내부방침을 마련해두고 있다.
▷광고리베이트·촌지, 급여 구실 = 이런 비윤리적인 행태는 일부 지역에 국한된 일이 아니다. 적지 않은 지역언론 기자들은 ‘기자 윤리’를 버린 대가로 광고리베이트나 촌지를 받는 대신, 건설인·허가나 공사현장에서 발생하는 불미스러운 일을 묵인해 준다.
기자들의 비윤리적인 행태는 근본적으로 지역언론의 열악한 재정상황에서 비롯됐다. 부산·경남, 대구·경북 등 일부 지역의 언론사를 제외하면 상당수 지역 신문사 기자들은 최저생계비 수준의 급여로 생활하고 있다.
전북 지역의 한 신문사 사장이 “우리는 그래도 양심적이다. 한 달에 100만 원도 못 받는 기자들이 부지기수다”라고 말했을 정도다. 이러다 보니 기자들은 광고리베이트나 촌지 등 본업 외적인 일에 매달릴 수밖에 없다.
충주지역의 한 신문사 기자는 “충주지역에 일간지만 7∼8개에다 주간지까지 합치면 엄청난 매체가 있다. 도세가 약한 지역에서 이들이 나눠먹고 살려니 배가 고플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 지역의 다른 기자는 “건설업체 담당 기자들은 기사를 잘 쓰는 기자보다 광고를 잘 따오는 기자들을 배치한다”며 “광고당 10%의 리베이트를 준다”고 전했다.
그러나 이런 현실이 기자들의 비윤리적 행위를 정당하게 만들어 주는 것은 아니다.
지역언론발전위원회가 출범해 지역언론의 비위와 기자들의 비윤리적 행위를 검증하고 있지만 이는 장기적인 대안일 뿐이다.
한국기자협회 정일용 회장은 “출마할 때도 품위 손상행위에 대해 엄격하게 대응하겠다고 밝힌 적이 있다”며 “협회의 불만처리센터와 윤리위원회에 신고가 들어올 경우 사안을 따져 엄격하게 대응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정 회장은 “지역 언론 스스로가 이런 문제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고 있어 답답하다”며 “지역의 언론시민단체를 통해 감시활동을 더 적극적으로 벌여나가겠다”고 밝혔다.
김성완·김상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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