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공무원노동조합 부산지역본부 동래구지부

[한겨레] 유시민 보건복지부 장관이 연금개혁의 운을 떼었다. 일개 부처 수장 이상의 정치적 위상을 갖고 있는 그이기에 발언 자체가 예사롭지 않게 들린다. 그는 지식 ‘흡수력’이 뛰어난 사람이다. 복잡한 정책의 본질을 잘 꿰뚫어 본다. 그의 발언에는 국민연금의 사각지대와 재정 안정화, 그리고 적립금의 삼각관계를 두고 꽤 깊은 수준의 이해가 묻어난다. 그러나 몇 가지 핵심 지점에서 유 장관의 연금 개혁방향과 그 근거에 근본적인 의문이 제기된다.

무엇보다 국민연금기금 적립규모의 적정성에 대한 문제의식이 빠져 있다. 이 문제는 재정 안정화보다 시기적으로 먼저 해결되어야 할 뿐만 아니라 연금개혁의 방향을 결정하는 본질적 측면이다. 정부안대로 연금액을 50%로 낮춰도, 심지어는 40%로 낮춘다 해도 최대 국내총생산(GDP) 대비 65%에서 55%의 연금기금이 적립된다. 연급 지급을 위해 기금을 현금화할 때의 경제적 충격을 조금이라도 상상해 보면 현재처럼 과도하게 기금을 적립하는 방식은 존재할 수도 없고, 존재해서도 안 된다. 적립금 규모를 낮춘다면 이는 부분적인 부과방식의 이행을 의미한다. 즉, 기존 논의와는 완전히 다른 시각에서 국민연금을 재설계해야 한다. ‘더 내고 덜 받자’는 식의 감성적 논리로는 ‘과도한 적립금 폭탄’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정부개혁안의 빼대를 이루는 보험수리적 의미의 재정 안정화 또는 기금고갈 개념도 완전히 재검토해야 한다. 정부 개혁안은 막대한 연금기금을 적립하고 기금고갈 시점을 연장하자는 것이다. 기금고갈을 영원히 막으려면 낸 것만큼만 받아가는 칠레나 싱가포르의 사보험적 연금제도말고는 대안이 없다. 공적연금 재정안정화의 진정한 의미는 총연금 지출규모를 일국의 경제가 감내할 수 있는 수준에서 통제하는 데 있다. 현행 60%의 연금액을 유지해도 국민연금의 총지출규모는 2050년을 넘어서도 우리 경제가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라는 점은 정부 보고서에도 명확하게 서술돼 있다.

연금을 깎지 않아도 우리 경제가 그 부담을 감당할 수 있고, 연금액을 낮췄을 때 노인 빈곤층이 광범하게 발생할 것이 충분히 예상되는 상황에서 연금제도의 보험수리적 재정안정화가 과연 노후빈곤 예방을 근본목적으로 하는 국민연금의 개혁 근거가 될 수 있는지 진지한 재검토가 필요하다. 유 장관이 주도해야 하는 대타협의 핵심은 국민연금의 총지출규모에 대한 정치·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는 것이다. 이 문제가 풀리면 나머지는 기술적인 문제일 수 있다.

특수직역 연금 개혁도 내는 돈과 받는 돈의 차액을 단순 비교하여, 과도하게 세금 많이 쓴다는 식의 접근으로는 한걸음도 나갈 수 없다. 좀더 철학적이고 도덕적인 담론을 만들어야 한다. 가령 공무원·군인·교직원 연금의 관대함이 정당화될 수 있는 사회적 근거는 무엇인지 정당화된다면 어느 정도 수준이 적절한 것인지, 사회적 토론이 선행돼야 한다. 연금 수익비를 따지면서 시작된 과거의 특수직역 연금 개혁이 과연 얼마나 생산적이었는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공적연금 개혁에서는 절대 포기해서는 안 되는 중요한 가치가 있다. 거기에는 우리 사회를 이 정도나마 만들어놓은 노인세대를 어떻게 사회적으로 예우할 것인가 하는 대우·예의의 문제가 담겨 있다. 한국 현대사의 모순과 질곡을 자양분 삼아 성장한 정치인 유시민에게 인간에 대한 예의를 연금개혁의 중심에 놓으라는 요구는 당연한 기대가 아닌가 또한 박정희 시대와는 질적으로 다른 사회를 갈구하는 사람들에게 복지부 장관으로서의 유시민이 화답해야만 하는 것도 바로 이런 문제가 아닌가

김연명 중앙대 사회복지학과 교수·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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