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면서-
오늘 34년여의 공직 생활을 마감하면서 떠난다는 인사를 드리기 위해 이 자리에 섰습니다. 막상 생사고락을 같이했던 동료 여러분들과 헤어진다는 생각을 하니 아쉬움도 남고 벌써 세월이 그렇게 흘러갔나 하는 생각도 들지만 자연인으로서 자유인으로서 내일을 생각하면 설레임도 있습니다.
그간 도와주신 많은 동료들에게 고맙다는 말씀을 먼저 드리고 직설적인 나의 언어습관으로 인해 오해를 가지고 계시는 분들은 오해를 풀어달라는 간곡한 부탁과 아울러 항시 가슴속에 형제 자매와 같은 따스한 정을 한시도 버린적이 없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나는 공직을 선택했고 부끄럼 없이 살아왔다고 자부 합니다. 특히 6.25때 피난을 와서 자리잡은 범일동에서 부산진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처음얻은 직장이 좌천동이었고 고학과 사업을 하면서 공직에 들어와 동구청에서 퇴임을 하는 인연을 맺었습니다. 집안 어른들께서는 작은 그릇이 큰자리를 탐하면 나라에 누를 끼친다는 말씀과 아울러 유종의 미를 거두어야 한다는 말씀을 잊지 않고 생활해 왔습니다. 그러나 공직 마지막 부분에서 공이 없는 나는 공로연수를 거부했고 알 수 없는 이유로 대기 발령을 받았습니다.
보직이 있는 행정사무관을 대기발령시킬수 있는 경우는 현행법상 부정이나 비리로 인하여 더 이상 공무를 수행할수 없는 경우입니다. 이 경우에도 그사유는 밝혀야 하거늘 구청장을 비롯한 그 누구도 사유를 밝히지 않고 있습니다. 공로연수제도는 정년 1년을 남겨둔 공직자를 그 대상으로 하며 이 경우 6개월은 당사자의 동의를 받아야 하며, 나머지 6개월은 교육명령으로 처리하도록 되어있습니다. 저는 당사자의 동의를 요하는 부분 6개월에 대하여 공로연수를 거부한 것입니다. 공로가 없는 본인이 일하지 않고서 봉급을 받는다는 것은 나로서는 인내할 수 없는 일이였으며 또한 그누구도 내게서 법이 부여한 일할수 있는 권리를 뺏아 갈수는 없는 것입니다.
법을 집행하는 공무원이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작금의 현실을 어디에다 비유하겠습니까? 제도가 나쁘면 제도를 고쳐야 하는 것이고, 34년 일해온 일터에서 이유도 없이 배제 시킬수 있는 그 무소불위의 권한을 누가 주었습니까? 저는 이과정에서 여러곳에서 압력과 협박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사심 없고 욕심이 없는 저는 두려워 해야할 이유가 없습니다. 서슬이 퍼런 5공 시절에 전공무원이 사표를 제출해 놓고 일을 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만 그때도 원칙은 있었습니다. 이 자리의 그누구님도 공직을 마감하는 시간은 있습니다. 權不十年이란 말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권세는 10년을 가지 않는 다는 말입니다. 나는 공직을 선택하면서 공무원은 일로서 승부해야 한다고 믿어 왔던 사람입니다. 최소한 밥 값을 해야한다고 주장했고 그렇게 살아 왔습니다. 합리적인 의견과 주장을 반골로 몰아붙이면 조직은 언로가 막힙니다.그리고 공무를 처리할 때 사심이 있으면 주민들에게 누를 끼치게 됩니다. 사심이 있는 일의 결과는 언제나 문제점이 있습니다. 또한 원칙을 벗어난 일은 삼가 해야 합니다. 원칙은 지키라는 것이며, 원칙의 반대는 반칙입니다.
오늘 조금 쉽게 살고 싶다고 부당한 지시와 압력에 굴하다 보면 두고 두고 후회하게 됩니다.
동료 여러분 오늘 조금 고달파도 원칙에 따르면 오래 두고 편합니다. 그것은 바로 건강을 지키는 비결입니다. 그리고 항시 깨어 있어야 합니다. 잠자는 자의 권리는 그 누구도 보호하지 않습니다. 어느것이 나의 권리이고,권한인지 어느것이 나의 의무이며 책임인지도 구별 못하는 사람들에게 이용당하면 두고 두고 후회하게 됩니다.
저는 공무원들이 일하지 않는다는 말을 들을때마다 가슴이 아팠습니다. 나는 이말을 공무원들이 적극적으로 일 하지 않는다라고 이해는 하면서도 적극적으로 일하지 않는 이유가 어디에 있는지 생각을 해 봅니다.
우리 조직 사기의 원동력은 인사와 보수입니다. 그러나 보수는 국민의 경제력에 달려 있는것이고 근간은 인사인데, 과연 우리 동료들중 몇 %나 인사의 투명성을 신뢰하고 있는지 묻고 쉽습니다. 엄연히 권한이 위임된 사안 임에도 간섭과 압력을 받으면 일 못하지요. 9급이 해야할 일도 과장이 해야할 일도 간섭하려면 몽땅 가져가서 누군가 혼자 해야 합니다. 가장 유능한 지휘관은 임무를 믿고 맡기는 사람입니다. 믿고 맡긴 과업이 잘못될때는 책임을 엄히 물어야 하거늘 믿고 맡기지 않았으니 책임질 사람도 없습니다.
부산역 광장에 집채만한 돌덩어리가 들어서도 책임질 사람없고 여러분 전입규제 알지요. 부산시 본청에서는 동구직원은 받아들일수 없다. 다시말하면 전입시험을 쳐서 아무리 젊고 유능해도, 동구직원을 받아들일수 없다는 통보를 받고도 책임질 사람 없습니다. 공무원의 시행착오 바로 예산낭비와 직결됩니다. 만약 여러분의 주머니에서 직접나온 돈이라면 어떻게 했을까요. 행정사무감사장을 나오던 어느 구의원의 말이 생각 납니다. 도로개설에도 문제점이 있고, 신청사 건립도 문제가 있는데 책임질 사람이 없다는 것입니다.
지방자치제를 시작할때부터 여러분은 직업인으로서 공무원 월급인이 된것입니다. 일반직 구청장 자리가 민선 구청장으로 바뀐 것입니다. 일반직 공무원이 아무리 유능해도 제도가 바뀌기 전에는 구청장으로 승진하는 것은 불가능 합니다. 이것은 여러분의 사기와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이제 여러분들은 전문 행정인으로 남아서 지방토착세력들의 비리와 부조리로부터 주민의 재산을 보호할 의무가 남습니다. 그 의무를 다하기 위하여 모두가 당당하게 正道를 걸어가야 합니다. 벼슬을 구걸하기 위하여 세도가의 집을 기웃거리는 못난짖은 이제 그만 해야 합니다. 공무원 노조는 설립당시의 정신처럼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다는 감시자로서 역할을 다해야 합니다. 주민들은 여러분들의 억지 친절보다 바로서서 깨끗한 사회를 만드는데 앞장서 주는 것을 더 바랍니다. 주역에 이런말이 있습니다.-장차 배반할자의 말은 부끄럽고 - 마음가운데 의심이 있는자는 그말이 여러 갈래로 갈라지고 - 선한사람을 무고하는자의 말은 그말이 비굴하고 - 정도를 걷는자의 말은 한결 같다고 했습니다.
동료 여러분!
우리 모두 바로살아야 합니다
직위를 가진 분들은 우리의 미래인 젊은 동료들이 바로 살아가도록 도와 주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특히 구청장은 그 선봉이 되어야 합니다. 나는 내 양심과 현실사이에서 격렬한 갈등을 겪으면서도 불의와 타협하지 않고 살아 왔습니다. 타인을 직접 겪어 보지 않고서는 비판하지 않았습니다. 책임을 아랫사람에게 전가하는 비굴한 삶을 살지 않았습니다.
동료 여러분! 이제 떠나야 할 시간입니다.
어려운 사람을 보살필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는 사실과 태극기가 걸린 집에서 내 젊은 시절을 보낸 것을 무한한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비록 큰 명예는 얻지 못했지만 나를 신뢰해주는 동료 여러분이 있다는 믿음을 간직하고 이 자리를 물러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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