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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시간: 2006년08월02일

새사연 홈페이지: - 조회 : 344

위기의 진보세력 무엇을 할 것인가!

위기의 진보세력 무엇을 할 것인가!
[인물과 사상의 눈] 진보세력이 단결로 새 주체 형성, 민중에게 다가가야

'아름다운 386'의 꿈

5·31 지방선거. 집권당인 열린우리당이 참패했다. 노무현 정권의 무능으로 이미 지지세력이 대부분 이탈했기에 충분히 예상한 결과였다. 그럼에도 선거결과가 적잖은 사람들에게 충격으로 다가온 까닭은 있다. 집권당의 득표율이 예상치를 훨씬 밑돌았기 때문만이 아니다. 여당이 준 실망이 한나라당 압승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엄연히 존재하고 있는 또 다른 야당, 민주노동당은 열린우리당의 실정에서 아무런 ‘반사 이익’도 얻지 못했다.

더구나 지방선거에 곧이어 열린 월드컵은 ‘대∼한민국’을 온통 달궜다. 붉은 악마들의 잔치로 정치적 무관심은 더 퍼져갔다. 단적인 사례가 6월 13일, 주한미군 장갑차에 깔려 참혹하게 숨진 두 여중생 4주기 행사다. 서울 도심에서 효순과 미선을 추모하는 촛불은 바로 옆 축구를 응원하는 붉은 물결과 비교 자체가 어려울 만큼 을씨년스럽게 타올랐다.

한국 사회에서 벌어진 풍경에 가슴이 먹먹해서일까. 성실하게 생활인으로 살아가며 지역운동에 동참하고 있는 40대가 착잡한 심경을 밝힌 글을 보내왔다.

“2002년 ‘Be the reds’에서 2006년에는 ‘Go together Korea’로 이름이 바뀐다. 축구동우회가 자발적으로 즐기면서 내건 구호가 어느새 통치 이데올로기로 바뀌어 버린 것이다. 더군다나 상업적인 마케팅과 결합하면서 그 흔한 빨간색 티마저도 입기가 여간 곤란해진다. 대중에게는 정말 그런 내면적적인 욕구가 있는지에 대한 의문도 생기기 시작한다.”

비단 그만일까. 축구에 열광하는 붉은 악마의 뿔 달린 얼굴들을 보며 의문을 던진 이들은. 그럼에도 그의 글을 소개하는 이유는 이어지는 다음 글에 있다.

“국가 이익이 곧 나의 이익이 될 것이라는 믿음은 여유보다는 불안과 무희망에 근거한다. 민중의 삶이 피폐해도 그들의 삶을 기대할 수 있는 이가 있다면 그들은 절대로 희망과 미래를 포기하지 않는다. 그들의 삶과 운명을 내맡길 자가 없다면 그들은 180도 돌변하여 미래보다 현실을, 희망보다 생존을 선택한다. (중략) 한국 사회의 정세는 5·31 지방선거를 기점으로 반환점을 통과한 것이며, 진보세력에 대한 더 이상의 특혜도 없다는 최후의 통첩인 셈이다. 정세가 퇴행할 것인지 아니면 진보할 것인지는 한국 사회의 진보 핵심역량이 20만 명 정도가 되는 데 달려 있다. 4000만 명 중 반절 잘라서 2000만 명의 1%가 조직화되고 민중의 지지와 기대를 한 몸에 받을 때만이 승리를 낙관할 수 있다.”

여기서 주시할 대목은 미래가 “진보 핵심역량이 20만 명 정도가 되는 데 달려 있다”는 진단이다. 물론 “4000만 명 중 반절 잘라서 2000만 명의 1%”라는 주장에선 막연함마저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막연함은 곧장 절절함으로 바뀐다.

“아∼ 과연 나는 20만 명 중 하나일 수 있을까? 20만 명을 하나로 모아낼 수 있는 대안은 무엇인가? 다시금 선배열사들의 죽음을 생각하자. 그들이 왜 죽었는지를. 산 자로서 떳떳해 보잔 말이다.”

한 40대 생활인이 쓴 글을 길게 인용하는 까닭은 다른 데 있지 않다. 1980년대에 6월 대항쟁을 꽃피운 세대들 ― 이른바 386으로 불리는 바로 그들 ― 이 공통적으로 느낄 심경을 그가 고스란히 대변하고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이 땅의 민주주의와 민족통일에 아낌없이 몸 던진 ‘열사들의 죽음’ 앞에서 “그들이 왜 죽었는지를” 진지하게 묻고 “산 자로서 떳떳해 보자”는 호소는 깊은 울림을 준다.

20만 결집을 바라는 ‘아름다운 386’의 꿈은 대하소설 <태백산맥>의 작가 조정래의 발언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작가는 5월 25일 서울대 ‘관악초청강좌’에서 대학생의 사회의식 빈곤을 강도 높게 비판했다. 대학생 과반수(52%)가 ‘4·19가 다시 오면 나가 싸우지 않겠다’고 응답한 설문결과를 인용한 작가는 “한 사회집단에서 혁명이 성공하려면 1%의 행동하는 사람과 10%의 지지자만 있으면 된다는 말이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일제 치하 우리나라에서 독립운동 가담자는 2400만 명 중 10만 명이 안 됐으며 우리는 이 때문에 독립하지 못했다”고 잘라 말했다.

노 정권을 진보로 보는 인식의 문제

그랬다. 식민지와 분단을 거치며 민주화운동으로 민주주의를 일궈냈음에도 군부독재세력을 이어온 한나라당이 지방선거에서 압승하고 나선 것은 분명 일과성으로 넘길 문제가 아니다.

무엇보다 열린우리당에 실망한 표가 진보정당으로 옮겨가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선거 직전 민주노동당의 권영길 의원은 “이번엔 열린우리당에게 가는 표가 사표”라는 논리를 전개했다. 권 의원은 “열린우리당에 가는 표가 우리에게 오면 예측할 수 없는, 엄청난 성과를 거둬내는 것이다. 희망의 씨앗은 뿌려졌고 앞으로 큰 숲을 이루게 될 표”라며 “열린우리당으로 가지 말고 민주노동당으로 결집”을 호소했다.

권 의원의 호소는 기실 뼈저린 아픔에서 나온 말이다. 선거를 맞을 때마다 진보정당은 ‘사표론’에 시달려 왔다. 두 차례 대통령선거에 후보로 나섰던 권 의원이 “미 CIA 앞잡이라는 소리까지 들었다”고 토로했듯이, 진보정당에 투표하면 한나라당 후보를 돕는 꼴이라는 논리가 제법 퍼져갔기 때문이다.

하지만 선거결과 민주노동당은 목표치에 밑도는 12.1% 득표에 그쳤다. 광역단체장은 물론, 기초단체장도 배출하지 못했다. 지방선거를 계기로 일각에서 ‘역사적 전환’을 주장하는 이유다. 가령 “지난 20년 동안의 ‘민주화 시대’가 막을 내렸다”는 진단이 열린우리당 내부에서도 거침없이 나왔다. 6월 대항쟁 뒤 ‘진보개혁세력’이 민주·개혁·통일이라는 거대 담론을 선점해 지지층을 결집·충원해 왔는데 그런 구도가 5·31 선거에서 한계점에 도달했다는 지적이다.

결국 노무현 정권의 무능으로 진보세력 전체가 공멸하고 있다는 진단이 슬금슬금 퍼져가고 있다. 그래서다. 시시비비를 분명히 가릴 필요가 있다. 노 정권의 실정이 곧장 진보세력 전반의 무능으로 등식화하는 것은 사실과 맞지 않고 옳지도 않다. ‘서민’의 지지를 받고 극적으로 대통령에 선출된 노무현이 취임 뒤 우향우로 줄달음질쳤기 때문이다. 신자유주의의 완결판인 한-미 자유무역협정을 강행하려는 모습에서 그의 정체성을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문제는 노 정권이 진보냐 아니냐에 있지 않다. 많은 사람들이 노 정권을 진보로 인식한다는 사실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여기에는 여론시장을 독과점하고 있는 부자신문의 여론몰이가 큰 몫을 했다. 열린우리당에 실망한 표가 민주노동당 아닌 한나라당으로 옮겨간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개혁과 진보차이는 6월 대항쟁 직후부터 벌어졌다.

여기서 진보세력의 위상을 조금은 긴 역사적 맥락에서 분석해볼 필요가 있다. 두루 알다시피 우리 사회는 1987년 6월 대항쟁으로 군부독재의 지배에 마침표를 찍었다. 문제는 그 마침표가 온전하지 못했다는 데 있다. 폭발적인 민중운동에 위협을 느낀 전두환 정권이 6?29라는 기만극을 내놓았기 때문이다. 그 결과였다. 서울 광화문에서 남대문까지 거리를 가득 메웠던 시위대는 이른바 ‘노태우 선언’을 넘어서지 못했다. 노태우가 대통령에 당선되고, 그와 김영삼이 손잡으면서 민주주의의 전개과정은 뒤틀렸다.

▲ 87년 6월항쟁은 우리나라 민주주의를 한발 앞당기는 성과를 거두었다.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자료사진

군부독재의 종식을 가져온 1987년의 6월 항쟁. 20년의 시간이 흐른 지금, 진보세력은 그 항쟁의 담론을 얼마나 넘어섰는지,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는 그때로부터 얼마나 발전되었는지는 의문이다.

노태우-김영삼에 이어 김대중이 첫 평화적 정권교체를 이루었을 때도 그 뒤에는 김종필과의 ‘연합’이 있었다. 노무현 정권의 등장은, 더구나 정몽준과 결별을 통해 극적으로 집권했기에 민주발전의 기대를 크게 부풀렸다. 김영삼-김대중과 달리 노무현은 과거에 노동 문제에서도 진보적 성향을 보였고 선거과정에서도 분배를 강조했다. 실제로 대통령 취임을 앞둔 2003년 2월 13일, 노 당선자는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을 방문한 자리에서 “여론의 장을 지배하는 사회적 힘의 균형에서 경제계가 세지만, 앞으로 5년 동안 힘의 불균형을 시정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그 말을 계기로 언론이 대대적으로 부각해 보도했던 이른바 ‘친노(親勞) 정책’은 전혀 현실화하지 못했다. 노사 사이에 균형은커녕 되레 불균형이 더 커진 게 엄연한 현실이다. 수구언론이 조장한 여론몰이에 노 정권 스스로 편입되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노 대통령은 ‘국민소득 2만 달러 시대’라는 삼성 재벌의 의제를 그대로 받아들였다.

노 정권의 실패로 6월 대항쟁에 참여했던 ‘민주 인사’들의 한계는 남김없이 드러났다. 하지만 놓치지 말아야 할 점이 있다. 김영삼-김대중-노무현으로 이어지는 ‘개혁정권’과 진보세력의 차이는 이미 6월 대항쟁 직후부터 벌어졌다는 사실이다. 87년 7월에서 9월에 걸친 노동자대투쟁은 노동운동에 토대를 둔 새로운 진보정당 움직임을 예고하는 것이었다.

애면글면 그 움직임은 마침내 2004년 4월 총선에서 민주노동당이 국회에 진입하는 것으로 현실화했다. 하지만 민주노동당은 아직 고통 받는 민중으로부터 자신의 어려움을 해결해줄 정당으로 폭넓게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개혁정권’의 실패가 진보세력 일반에 대한 실망으로 이어지면서 문제는 더 심각해졌다.

실제로 비관적 징후들은 여러 곳에서 감지된다. 대학가에 학생운동이 침체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20대의 정치의식이 바뀌고 있다는 진단까지 나온다. 정치의식의 부족에 더해 월드컵에 열광하는 젊은이들의 풍경은 사뭇 한국 민주주의의 미래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는 게 사실이기도 하다.

새삼 이 땅에서 살아가고 있는 민중의 현실을 짚어보아야 할 이유도 여기에 있다. 오늘 한국 사회는 신자유주의로 양극화가 무장 심화되고 있다. 절대 빈곤층이 800만 명에 이른다. 전체 노동자 가운데 비정규직이 절반을 넘어선 상황이다. 농민들이 생존권 싸움을 벌이는 과정에서 ‘공권력’에 의해 대낮 거리에서 맞아 죽었다. 청년실업의 문제는 갈수록 대학문화를 보수화하고 있다. 미국 부시 정권의 대북 압박 정책은 민족위기를 부추기고 있다.

노동자, 농민, 도시빈민, 예비 노동자(학생)들의 상황이 열악하고 남과 북으로 갈라진 민족이 위기를 맞고 있음에도 이를 극복할 주체가 보이지 않는 게 현실이다. 20만 명이든 1%든 진보운동의 주체부터 형성해야 할 이유가 여기 있다. 1970년대 이후 민주주의를 일궈낸 이 땅의 진정한 민주세력과 진보세력이 단결해야 할 까닭도 마찬가지다.

진보 단결의 3원칙

물론, 전제가 필요하다. 아무런 원칙도 없이 단결을 주장할 수는 없다. 이미 필자는 6월 대항쟁이 미완이 된 결정적 계기였던 ‘6·29 선언 기념일’을 맞아 “모든 진보가 단결할 수 있는 3원칙”으로 ‘과거 불문’과 신자유주의 반대, 6·15 공동선언 실천을 제안했다('왜 모든 진보는 단결인가', <한겨레> 2006년 6월 29일자). 여기서 진보단결의 3원칙을 더 자세히 제안하고 싶다.

첫째는 과거 불문. 지난날에 어느 ‘정파’ 또는 어느 조직에서 활동했는지를 판단기준으로 삼지 말자는 뜻이다. 1980년대에 불거진 NL(민족해방)과 PD(민중민주주의)의 대립은 오늘에 이르기까지 20여 년 동안 이어졌다. 물론, 운동 내부의 차이는 있어야 마땅하고 또 보장해야 옳을 터이다. 하지만 견해 차이가 진보세력의 힘을 분산시키거나 파벌적 양상으로 나타난다면, 더는 방관할 문제가 아니다. 실제로 두 세력의 문제는 대학 총학생회 선거에서부터 노동운동 조직, 더 나아가 진보정당 지도부 선출에 이르기까지 두루 갈등요인이 되어왔다. 하지만 민족해방과 민중해방의 과제가 결코 분리될 수 없다는 점에서, 무엇보다 민중 앞에서 둘 사이의 갈등이 진보운동 전반의 신뢰를 떨어뜨린다는 점에서, 단결은 절실한 과제다. 일찍이 박현채도 우려했다.

“PD와 NL의 대립은 현실적으로 이론적인 타당성을 갖지 못한다. NL은 PD를 위한 것이어야 하며, PD는 오늘의 상황에서 민족해방을 선행적인 요구로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PD, NL은 대립이 아니라 하나로 통일되어야 할 것이다. 오늘 우리 사회의 NL, PD 분립은 잘못된 일이다. PD적 입장에 서지 않는 NL의 비계급성, PD적 입장을 저버린 NL론은 허구다. 전위적인 역사적 변동은 기본적으로 계급해방의 입장을 일차적으로 견지하지 않을 수 없다.”(4월혁명연구소 월례발표회 발제논문, 1992년 6월).

그래서다. 진보운동에 나선 누군가를 평가할 때, 중요한 것은 과거가 아니다. 오늘이고 내일이다. 앞으로 이 땅의 진보를 위해 살아가겠다면 모두 힘을 모아야 한다. 진보운동에 얼마나 헌신하고 유능하게 활동했는가를 평가의 잣대로 삼아야 옳다. 과거에 운동 경험이 전혀 없더라도 그것이 문제일 수는 없다. 진보운동이 발전하려면, 운동하지 않았던 사람들이 대거 진보진영으로 넘어와야 한다. 그것이 진보적 지식인과 민중이 하나로 거듭나는 진보의 주체를 형성하는 길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여기서 무엇을 진보로 볼 것인가라는 문제가 제기된다. 둘째와 셋째 원칙은 바로 그 진보의 내용을 담고 있다.

먼저, 신자유주의 반대다. 1997년 국제통화기금의 구제금융을 계기로 본격화한 신자유주의적 재편은 한국 사회에 비정규직의 급증과 사회 양극화를 불러왔다. 모든 것을 자본의 이윤 증대라는 획일적 가치로 파악하는 신자유주의는 지구촌 곳곳에서 민중의 고통을 자아내고 있다.

더러는 신자유주의 반대만으로 그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신자유주의 반대가 아니라 자본주의를 반대해야 한다는 논리다. 얼마든지 나올 만한 주장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본주의를 반대하는 사람이 신자유주의를 반대하는 사람과 함께 일할 수 없는 것은 결코 아니다. 굳이 신자유주의 반대냐, 자본주의 반대냐를 따지며 애써 차이점을 찾거나 뺄셈을 하기보다는 공통점을 찾고 덧셈을 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신자유주의를 극복하는 운동 과정에서 자본주의 문제를 어떻게 할 것인지 얼마든지 토론할 수 있고 의견을 모아갈 수 있다.

자본주의 이후의 사회가 어떤 사회인가, 또 그 새로운 사회가 오늘의 상황에서 실현 가능한가에 대한 구체적 논의가 뒤따라야 함은 말할 나위 없다. 신자유주의를 반대하는 사람들을 ‘개량주의’로 싸잡아 몰아세우는 논리와 운동방식으로는 자본주의는커녕 신자유주의조차 극복할 수 없다. 세계화의 흐름 속에서 신자유주의 극복은 결코 만만한 과제가 아니기에 더 그렇다.

사회 양극화가 필연인 신자유주의는 지속 가능한 체제가 아니라는 점에서 근본적 한계가 있다. 신자유주의를 넘어서려는 운동이 활발하게 벌어질 수밖에 없는 까닭이다. 신자유주의는 사회 양극화와 불평등 심화를 불러오기 때문에 자신의 의도와 무관하게 진보세력의 정치적 기반이 확대될 수밖에 없다. 남아메리카 대륙에서 진보정권들이 곰비임비 등장하고 있는 것이 그 ‘증거’이다. 언제나 색깔논쟁을 즐겨 펴는 부자신문의 눈으로 본다면 남아메리카 대륙은 온통 빨갛다고 할 정도다.

문제는 다시 노무현 정권이다. 신자유주의를 극복하려 노력할 섟에 한미 자유무역협정을 서두르고 있다. 진보세력이 단결해서 저지하지 못하면 한-미 자유무역협정이 자칫 체결될 수도 있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마지막으로 6·15 남북공동선언 실천이다. 진보세력 내부에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이나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바라보는 시선에 큰 차이가 있음을 모르지 않는다. 하지만 그럴수록 선언을 유의해서 읽을 필요가 있다. 선언은 제 1항에서 “나라의 통일 문제를 그 주인인 우리 민족끼리 서로 힘을 합쳐 자주적으로 해결해 나가기”로 합의한 데 이어 2항에서 “남과 북은 나라의 통일을 위한 남측의 연합제 안과 북측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 안이 서로 공통성이 있다고 인정하고 앞으로 이 방향에서 통일을 지향시켜 나가기”로 했다. 인도주의 원칙을 확인한 3항에 이어 4항에서 “남과 북은 경제협력을 통하여 민족경제를 균형적으로 발전시키고, 사회, 문화, 체육, 보건, 환경 등 제반 분야의 협력과 교류를 활성화하여 서로의 신뢰를 다져 나가기”로 하였다.

공동선언의 뼈대를 찬찬히 분석해보면 그것을 실천하는 일과 북쪽 체제를 바라보는 시각이 기실 별개의 문제임을 확인할 수 있다. 자주적 통일의 과정이나 남북의 ‘연합-연방제 통일’ 과정에서, 그리고 ‘민족경제의 균형 발전’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남과 북의 체제는 변화가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서로가 서로를 받아들일 수 있을 만큼 두 체제 모두 성숙해야 공동선언의 구체화가 가능하다. 바로 그 선에서 진보세력의 단결은 충분히 가능하고 또 바람직하다. 굳이 단결해야 할 까닭은 다른 데 있지 않다. 남과 북의 통일 문제가 주변 강대국의 이해관계와 맞물려 있고, 특히 초강대국인 미국에 의해 휘둘리고 있는 상황에서 진보세력의 단결된 응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진보, 민중의 신뢰부터 찾아야

▲ 지금 우리 사회는 진보세력의 대단결로 새로운 주체를 형성, 신자유주의와 한미 FTA 그리고 분단체제 를 뛰어넘는 새로운 상상력이 필요할 때 아닌가? © 시대의창, 2006

지금까지 살펴보았듯이 ‘진보단결의 3원칙’은 민주와 진보세력이 힘을 모아 새로운 사회를 만들자는 뜻을 담고 있다. 그것은 6월 대항쟁의 온전한 계승과도 이어진다. ‘한 줌’도 안 되는 수구세력이 보기에 정치적 역량이 ‘한 줌’도 안 되는 진보세력이 갈라져 있는 현상은 쉽게 설명될 수 없는 부분이다. 운동이 운동 그 자체를 위한 것이 아님을 분명히 인식한다면, 진보세력이 고통 받는 민중 앞에 진정으로 책임 있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

진보세력의 3원칙에 근거한 단결은 그 자체가 진정한 민주주의와 민족통일이라는 이 땅의 변혁을 일궈낼 주체를 형성해 가는 과정이다. 그 과정은 동시에 진보세력이 다시 민중의 신뢰를 받을 수 있는 길이기도 하다.

진보세력이 단결로 새로운 주체를 광범위하게 형성하고 민중의 신뢰를 얻으려면, 무엇보다 신자유주의 세력 및 반통일 세력과 싸워 나가야 한다. 진보세력이 그 싸움에서 이기려면, 무엇보다 민중에게 새로운 사회의 대안을 설득력 있고 명확하게 제시해야 한다.

특히 적잖은 사람들이 ― 수구언론의 색깔공세가 큰 몫을 함으로써 ― 진보가 추구하는 이상이 옛 사회주의 체제나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이 아닌지 ‘의심’하고 있는 상황에서, 진보세력이 실현하려는 사회가 소련-동유럽식의 사회주의 체제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체제가 아님을 명토 박아야 한다. 동시에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는 구체적 정책들을 과학적으로 제시할 수 있어야 비로소 민중의 힘이 모아질 수 있다.

여기서 민중의 시각으로 5월 지방선거를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이미 한나라당의 정책과 차이가 없고 실제로 대연정과 권력이양을 추진했던 노 정권에 민심이 쏠리지 않는 것은 당연한 일 아닐까. 진보에 눈 돌려도 마찬가지다. 진보정당이 집권해서 현실화 할 수 있을 정책이 미덥지 않은 상황에서 고통 받는 민중이 표를 던지기 주저하는 것도 당연한 일 아닐까. 진보세력이 설령 좋은 의도가 있었다고 하더라도 그나마 굴러가고 있는 한국 경제를 자칫 파탄 낼 수 있다는 민중의 우려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대목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민중의 정치의식을 탓할 일은 아니다. 한국 사회의 민중은 오랜 민주화운동과 통일운동을 거치면서 정치의식이 시나브로 성숙해 왔다. 예컨대 <한겨레>가 2004년 5월에 창간 16돌을 맞아 일반 국민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를 보라. 응답자의 44.8%가 ‘우리 사회가 나아갈 바람직한 방향’으로 ‘북유럽식 사회민주주의’를 선택했다. ‘미국식 자유민주주의’를 선택한 응답자(39.2%)보다 많았다는 사실은 한국 사회의 ‘친미 전통’에 비추어볼 때 놀라운 일이다.

청년세대의 의식도 월드컵만으로 설명하는 것은 속단이자 오류다. <교수신문>이 전국 5개 권역 대학 630명의 신입생을 대상으로 2005년 4월에 실시한 신입생 생활 실태 및 의식 조사 결과(2005년 4월 26일자)를 보자. 학생들은 한반도 평화에 위협을 가하는 국가로 미국(54.8%)과 일본(22.7%)을 꼽아 기성세대와 뚜렷하게 구분되는 외교ㆍ안보관을 보여줬다. ‘북한’을 꼽은 학생은 14.0%였다. 통일과 관련해서도 71%에 이르는 절대다수의 학생들이 2000년 남북공동선언에 바탕을 둔 통일을 지지했다. ‘현 상태 유지’(16.2%)나 ‘남한 흡수통일’(9.7%)을 선택한 학생은 상대적으로 적었다.

그렇다. 무엇이 문제인지, 그리고 무엇을 할 것인지 분명하지 않은가. 진보세력이 민중에게 어떻게 다가갈 것인가에 달려 있다. 우리 민중의 새로운 정치에 대한 갈망은 2002년 촛불집회와 대선, 대통령 탄핵, 2004년 17대 총선으로 이미 확인되었다. 문제는 열린우리당의 무능에 있지 결코 국민의 정치의식에 있지 않다. 진보세력이 단결로 새로운 주체를 형성해 가고 과학적 정책대안으로 민중에게 다가설 때, 민중은 진보세력이 내민 손을 벅벅이 뜨겁게 맞잡으리라고 확신한다.

손석춘(새사연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