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록"을 보면 이런 이름들이 나온다. 모두 연산군이 뽑은 기생, "흥청"의 이름들이다. 연산군은 이들에게 "천과흥청(天科興淸)"이니, "지과흥청(地科興淸)"이니 하는 "계급"까지 부여했다. 그 숫자가 처음에는 100으로 셀 정도였으나, 나중에는 1,000으로 헤아리기에 이르렀다. 연산군은 이들을 끼고 "흥청망청"했다.
임금이 이랬으니, 신하도 그런 신하가 있었다. 성준(成俊)이라는 신하는 이조판서를 할 때 엄청난 뇌물을 챙겼다. 성준은 이덕(李德)이라는 애첩을 두고 있었다. 이덕의 "끗발" 또한 만만치 않았다. 어떤 사람이 이를 비꼬았다. 벽에 "이조판서 이덕"이라고 써 붙이기도 했다. 성준은 병조판서가 되어서도 뇌물을 계속 받았다. 나라꼴이 한심했다.
연산군의 종말은 "멋대로 인사" 때문에 빨리 닥쳐왔다. 놀기 좋아하는 연산군은 양화도라는 곳으로 나들이를 했다. 흥청망청 끝에 신하들에게 시(詩)를 지으라고 지시했다. 이조참판 성희안(成希顔)도 한 줄 읊어야 했다. 임금의 지시를 따르지 않을 수 없었다. 속이 뒤틀린 나머지 "임금은 원래 청류를 좋아하지 않는다(聖心元不愛淸流)"고 읊고 말았다. 연산군을 은근히 비판했던 것이다.
이런 소리를 듣고도 그대로 넘어갈 연산군이 아니었다. 자신을 비난했다고 당장 노발대발했다. 성희안을 "종 9품"으로 좌천시켰다. 차관급 고위관리를 말단공무원으로 강등시킨 것이다. "코드"에 맞지 않는 관리는 좌천당할 수밖에 없었다.
어처구니없는 인사를 당한 성희안은 앙심을 품었다. 정권을 뒤집기로 결심했다. 박원종(朴元宗)과 유순정(柳順汀)을 끌어들였다. "거사 계획"을 세웠다. 연산군이 보면 "역적 모의"였다. 그렇지만 성희안으로서는 "구국의 결단"이었다.
마침내 반정군이 칼을 빼들었다. 그러나 연산군은 상황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난리가 났다"는 보고를 받고도 이렇게 말했다. "아마도 흥청의 본 남편들이 모여서 도적질이라도 하는가 보다."
시간이 지나서야 "실제상황"인 것을 느끼게 되었다. 그래도 연산군은 사태를 가볍게 생각했다. 부인 신씨에게 "함께 나가서 반정군에게 사과하자"고 했다. 신씨는 오히려 "감"이 빨랐다. "일이 벌써 이 지경이 되었는데, 무슨 사과인가. 그대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고 남편을 윽박질렀다.
연산군이 유배지로 쫓겨갈 때는 사람들이 나와서 손가락질을 했다. 아이들까지 몰려와서 야유를 보냈다. 그럴 정도로 민심을 잃고 있었다. 그랬으니 연산군을 죽일 필요조차 없었다. 연산군을 복위시키겠다고 나설 사람은 아무도 없었기 때문이다. 연산군은 단종과 달랐다.
중종 또한 얼떨결에 임금이 되었다. 반정이 일어난 날 군사들이 집을 에워싸는 것을 보고 연산군이 자기를 죽이려는 것으로 생각했다. 차라리 자살을 하려고 했다. 이를 부인이 말렸다. "말머리가 우리 집을 향해 있으면 죽이려는 것이지만, 밖을 향해 있으면 우리를 호위하려는 것이다. 확인하고 나서 결정하자." 중종의 부인 역시 남편보다 "감"이 빨랐던 것이다.
그래도 연산군에게는 어떤 예감이 있었다. 후원(後苑)에서 잔치판을 벌이다가 시를 한 수 불렀다. "인생은 초로와 같아서 만날 때가 많지 않은 것(人生如草路, 會合不多時)." 연산군은 이렇게 읊고 나서 눈물을 두어 줄 흘렸다. 함께 있던 여러 흥청이 슬그머니 비웃었다.
그렇지만 연산군이 아끼던 전비(田非)와 장녹수(張綠水)만은 슬프게 흐느꼈다. 연산군은 두 여자의 등을 어루만지며 말했다. "만약 변고가 있으면, 너희들도 반드시 무사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면서 많은 물건을 하사했다.
오늘날 시끄러운 "인사 잡음"을 들으면서 떠올려본 "과거사"다. 연산군의 잘못은 셀 수도 없이 많지만 "중종반정"의 결정적인 계기는 아마도 "멋대로 인사" 때문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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