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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시간: 2006년08월24일

독극물 홈페이지: - 조회 : 344

조선일보의 ‘전교조 잡아먹기’, 억지의 끝이 없다

조선일보의 ‘전교조 잡아먹기’, 억지의 끝이 없다

‘전교조, 핏발세우는 투쟁 그만’. 8월 23일자 조선일보 일면을 장식한 포효다.
97~99년 전교조 위원장을 지낸 김귀식 씨의 기자간담회 내용을 전한 기사의 제목이다. 김진경, 이인규 씨에 이어 과거 전교조를 주도했던 사람으로 지금 전교조 공격 대오에 화력을 제공하는 인사 대열에 또 한 사람이 추가됐다.

이번 교육위원 선거에 전교조 후보들이 참패했는데 그 이유는 사사건건 반대만 일삼는 투쟁일변도의 노선이 국민의 외면을 받은 때문이란다. 교육청 앞 집회도 줄이고 자기 전문성을 길러야 한단다. 또 전교조가 조선일보의 취재를 거부하는 것에 대해서는, 진보와 보수는 서로 이웃이기 때문에 서로 접속하지 않으면 안 된단다.

조선일보가 보수란다! 이것만 보더라도 이 기사 저변에 깔려있는 정치의식의 몰지각성을 단박에 알 수 있다. 조선일보가 보수라니, 청와대를 접수한 보수세력이 땅을 칠 일이다.

교육위원 선거를 복기해보자. 교육위원 선거 직전에 수구언론은 색깔론을 동원해 전교조 죽이기에 나섰다. (관련기사 : ‘조선·동아의 ‘전교조 죽이기’는 교육위원 선거 때문?‘ 데일리서프라이즈 2006.07.27.) 시민단체들이 연명으로 색깔공세에 항의하는 기자회견을 하기도 했지만 이미 판세는 ’죽은 자식 불알 만지기‘ 형국이었다. 한 교육위원 선거 출마자는 색깔 공세가 시작된 이후 유권자들의 반응이 싸늘하게 식는 것을 피부로 느꼈다고 말한 바 있다.

그리고 수구언론은 전교조 싹쓸이론을 제기하며 국민의 견제심리까지 자극하는 천의무봉의 초식을 펼쳤다. 싹쓸이론은 지난 2004년 총선 당시 한나라당이 시전한 궁극의 초식이다. 그런데 그 싹쓸이론은 약자들만의 필살기다. 지금과 같은 보수적 정세에, 즉 어차피 그들이 우세한 터에 싹쓸이론까지 제기할 정도로 용의주도하고 냉혹한 선거전을 펼친 것이다.

선거 결과 누구나 예상했던 것처럼 전교조 후보는 많이 떨어졌다. 그러자 수구언론은 전교조의 참패라며 대서특필했다. 그리고 이번엔 참패 이유로 대안 없는 투쟁 노선을 지적하고 나섰다. 정리하면 이렇게 된다. 전교조를 실컷 공격한 다음, 선거 후 참패라고 규정하고, 그 다음엔 중량감 있는 인사의 입을 빌어 참패했으니 이제 입 닥치고 고분고분하게 굴라는 것이다.

따져보자.

1. 전교조는 참패했는가?

웃기는 소리다. 참패는 열린우리당이 했지 전교조가 했나? 생각해보라. 지금은 1987년 이후가 국민이 가장 보수화, 우경화한 시기다. 5·31 지방 선거 결과가 어땠는가. 전교조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전했다. 참패했다는 논거는 2002년 교육위원 선거에 비해 2006년 교육위원 선거에서 전교조의 득표율이 떨어졌다는 건데, 이건 당연한 거다.

노무현 후보가 대통령이 됐던 2002년에 전교조는 당연히 이기는 거고, 노무현 대통령의 지지도가 땅에 떨어진 2006년도에 전교조가 지는 것도 당연한 거다. 2002년도엔 국민들이 민주화 세력에 대한 부채감과 신뢰를 여전히 갖고 있었다. 지금 2006년도엔 국민들이 민주화좌파운동권에 넌덜머리를 내고 있다. 정권을 2.5번이나 줬기 때문에(김영삼 정권은 0.5번으로 친다) 부채감도 사라졌고 남은 건 기대를 배반당한 원망뿐이다.

국민들 입장에서 보면 참여정부가 곧 전교조다. 다 좌파운동권이다. 좌파운동권에게 정권을 맡겼더니 나라가 개판됐기 때문에 좌파운동권에게 교육위원직도 주기 싫은 것이다. 국민의정부, 참여정부에 대한 실망이 지금의 보수혁명 정세를 몰고 온 주원인이다. 아니었다면 전교조가 일년 사시사철 교육청 앞에서 좌판 깔고 집회굿을 해도 선거는 이긴다.

정말 열악한 상황에서 수구세력의 싹쓸이를 전교조는 막았다. 5·31 지방선거와 이번 교육위원선거의 결과를 대조해보라. 이번 선거를 ‘참패’라고 규정할 수 있는가?

2. 그럼 전교조가 참패하지 않았단 말인가?

웃기는 소리다. 당연히 참패한 거 맞다. 그럼 왜 참패하지 않은 것처럼 보일까? 열린우리당엔 없지만 전교조엔 있는 것의 차이 때문이다. 바로 ‘조직표’의 위력이다. 대통령 선거에서 조직표는 가장 맥을 못 추고 하부 단위 선거로 내려올수록 조직표는 맹위를 떨친다.

2004년 총선에 열린우리당이 뱃지를 주은 건 바람이 불었기 때문이다. 대체로 바람은 조직보다 강하다. 5·31 지방선거는 바람이 역풍으로 불었다. 바람과 조직이 합쳐진 복합형토네이도가 파멸적 결과를 빚었다. 지금은 87년 이후 가장 강한 역풍의 시기다. 교육위원 선거에 전교조가 선전한 것은 어떤 바람에도 흔들리지 않는 철밥통 조직표가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직표가 국민의 민심을 반영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조직표로 인한 착시를 걷고 보면, 민심의 이반이라는 역풍의 실체를 부정할 수 없다. 그러므로 전교조가 참패한 것은 맞다. 그러나 but, 여기서 참패라는 표현은 문학적인 수사다.

정리하면, 전교조는 이 엄혹한 정세에 나름대로 선전했다. 수구언론의 1차원적인 참패론과 그에 따른 변화, 자숙론은 불합리하다. 분명히 민심은 이반했고 역풍은 불었다. 그런데 그 국가적인 차원의 역풍은 참여정부 때문에 부는 것이지 전교조 때문에 부는 것은 아니다. 전교조가 대통령을 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전교조에 대해 분명히 존재하는 국민적 저주는 선거를 둘러싼 정치공세가 아닌 다른 차원에서 논의돼야 한다. 전교조를 둘러싼 지형은 한국사회의 현주소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그러므로 좀 더 거시적인 차원에서 냉정히 짚어야 한다. 이 문제를 어떻게 풀 것인가에 향후 30년 정치기조 혹은 대한민국의 100년 대계가 갈린다.

3. 대안 없이 반대 투쟁만 일삼는 세력은 누굴까?

1960년부터 개발시대주도세력은 그들의 나라를 만들기 위해 박차를 가했다. 그리고 90년대에 이르러 후발주자 중 유일하게 국제경쟁력 있는 중화학전자공업을 보유한 OECD 회원국을 만들었다. 개발과 함께 민주화세력 역시 그들의 나라를 만들기 위해 박차를 가했다. 그리고 90년대에 이르러 후발주자 중 유일하게 형식적 민주주의 체제를 쟁취한 나라를 만들어냈다.

그런데 우리 앞엔 여전히 거대한 장벽이 가로막혀있다. 후발주자와 선진국 사이를 가로막는 거대한 장벽. 90년대 이후 장벽에 봉착했고 한국사회는 정체되기 시작했다. 답답함에 국민의 불만은 극에 달했다. 국민을 비전을 원한다. 희망을 원한다. 어떻게 저 장벽을 시원하게 뛰어넘을 것인가.

한 쪽에선 그 답안을 국민들에게 제출했다. 바로 ‘시장화’다. 아주 오랜 옛날부터 쌓아온 시장화 정책들을 하나하나 국민들에게 제시하고 있다. 물론 한·미FTA는 그 결정판이다. 이 지점에서 민주화세력이 분열했다. 한·미FTA를 지지하는 민주화세력은 소수파다. 다수는 한·미FTA를 불편한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다.

그런데 대안은 뭐지? 대한민국 민주화 세력이 언제 대안을 제시한 적이 있었던가? 반대, 반대, 반대, 타도, 타도, 타도, 속 편하게 살다가 어느 날 덜컥 국회도 들어가고 청와대도 들어갔다가 미국이 키운 시장주의 관료들에게 놀아나고 있지 않은가?

국민은 민주화세력의 국정능력에 총체적 불신을 보내고 있다. 그리고 민주화세력은 여전히 국민들 앞에 ‘비전’을 제출하지 못하고 있다. 공병호보다 못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현장에 있는 전교조는 당장 닥쳐오는 시장화 공세에 반대, 반대, 반대하면서 몸을 던지고 있다. 전교조더러 대안이 뭐냐고? 몸빵하기도 바쁜 판에 무슨 대안인가.

대안 없으면 입 닥치라고? 그럼 시장화로 그냥 가잔 말인가? 한국 사회 30년 개발 체제가 끝나고 지금은 새로운 판을 짜는 시기다. 전교조에게 입 닥치고 개량적으로 나가라는 말은 새로운 체제를 시장원리주의로 짜자는 소리다. 지금 보수체제로 지형이 짜이면 미국처럼 그 지형은 아주 오래 지속될 수도 있다. 전교조는 투쟁하는 것이 맞다.

대안도 없는 주제에 목소리만 큰 권력집단은 바로 대한민국의 민주화세력 그 전체다. 죽은 박정희의 유령을 붙들고 안티박정희밖에 모르는 집단. 국민은 거기에 넌덜머리를 내는 것이다. 민주화세력이 국민들에게 대한민국 차기 체제의 비전을 제출해야 한다. 그것이 전교조의 책임인가? 아니다. 그것은 모두의 책임이면서, 또 아주 분명히는 일차적으로 인문학자들의 몫이다. 인문학자들이 치고 나간 다음 활동가, 행정가, 전문가 집단이 뒤를 따르고 그 다음 대중이 일어나는 것이다. 이것은 일, 이년 싸움이 아니다. 사사건건 전교조 하는 일에 트집 잡을 시간이 있으면 국가대계를 생각할 일이다.

전교조가 고분고분해지면 국민이 전교조를 지지할까? 전교조가 국민의 지지를 받을 방법이 하나 있기는 하다. 바로 학교를 ‘인간의 얼굴을 한 학원’으로 바꾸자고 주장하는 것이다. 투명하고 친절하고 따스한 학원. 이것이야말로 국민이 원하는 학교의 모습 아닌가? 이건 교사들의 자부심을 원천부정할 때만 가능한 방책이다. 그렇게 되면 교육도 사라지고 정신도 사라진다. 이렇게 되는 날은 전교조가 조직이기주의에 빠진 보신집단이 되는 날이다.

그러므로 전교조는 국민의 지지를 받아선 안 된다. 국민의 생각을 바꿔야 한다. 시대를 갈라야 한다. 어떻게? 시장화 세력처럼 쌓아놓은 게 없으니 이제부터라도 다 같이 노력해야지. 전교조만의 책임이 아니라니까!

하재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