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사정에서 한국노총과 사용자단체가 '복수노조 허용'과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에 대해 시행을 5년 유예하기로 한 것에 대해 레디앙에 이런 기사가 실렸다.
이번 상황은 충분히 예견됐었다. 이미 오래 전부터 많은 사람들이 삼성과 엘지, 포스코 등 무노조 대기업의 로비와 전임자 임금문제에 조직의 사활이 걸린 한국노총의 정치적 거래를 우려했기 때문이다. 5년 전에도 한국노총과 사용자단체는 똑같은 이유를 들어 복수노조를 5년 유예했었다.
그러나 민주노총은 아무런 대비도 하지 않았다. 오직 노사관계로드맵이 "민주노조를 무너뜨리려는 신자유주의 완성판"이라는 비판만 가할 뿐이었다. 김명호 실장은 "객관적 상황을 보면 쟁점은 많았지만 명확한 쟁점을 제시하지 못했다."며 "무엇을 쟁취하고 어디를 공격해야 할지 몰랐다."고 말했다. 결국 약삭빠른 한국노총이 노사관계로드맵 협상을 주도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지난 2001년 복수노조와 전임자임금 문제를 5년 유예할 때에도 민주노총은 복수노조 유예에 반대했지만 투쟁을 조직하지 못했다. 이번에도 정부가 정리해고 요건완화 같은 일을 벌이지 않는다면 전임자임금지급 금지가 5년 간 미뤄진 상황에서 복수노조 즉각 실시를 주장하며 투쟁의 전선에 나서기 쉽지 않아 보인다.
새내기 대의원이 이런 말하기가 뭐 하지만, 공무원노조의 이번 중앙위원회의 논의과정을 전해 듣고 대의원대회를 보고는 '명확한 쟁점을 제시하지 못했고, 무엇을 쟁취하고 어디를 공격해야 할지 몰랐다.'라는 말이 오버랩 된다.
현재 행자부의 비이성적탄압에 직면하여 어떻게 본부 지부를 사수해야 할지와 노동기본권 쟁취투쟁에 대해서 어떤 정세판단과 비전을 가지고, 투쟁과 사업의 구체적 방안을 어떻게 세우고 배치해 나가야 할지에 대해서 다같이 문제인식은 하면서도 논의하기 골치 아프니까 노동3권 완전쟁취의 기본원칙만 주장하다가 구체적 투쟁 및 쟁취방안에 대해서는 외면해 버린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든다.
중앙위의 자료와 중앙위원으로부터 전해들은 바에 따르면 논의 및 의결과정은 대략 아래와 같은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중앙위에 제출된 안건내용은 총액인건비제, 연금, 성과주의 등도 중요한 투쟁과제라고 장황하게 설명했으나, 세부 투쟁계획에서는 [9.9. 창원대회]를 제외하면 '공공연대'의 투쟁일정에 따라 공무원노조가 결합하는 것으로 설정되어 있었다. "공공연대 강화로 사회공공성 강화 투쟁"을 부르짖는 공무원노조 현 지도부의 성향이 반영된 사업계획이라는 것은 명확해 보였다.
중앙위 도중 이러한 안건에 반대하는 수정안이 제출되었다고 한다. 수정안도 '공무원노동기본에 대한 구체적 계획이 없다.'고 원안에 대해 비판하였으나, 구체적 사업계획 및 일정은 공공연대가 아닌 민주노총의 일정에 맞춰야 한다는 것뿐이었다. 결국 민중연대의 사업내용과 일정을 따라갈 것이냐? 아니면 민주노총의 사업내용과 일정을 따라 갈 것이냐?가 주된 쟁점이었고 투표결과 수정안이 의결되었다.
이 와중에 중앙위원 한 분이 공무원노동기본권 문제에 대한 의견수렴을 위해 위원회 등의 기구를 설치하자는 제안(의견?)이 있었으나, 위원장은 적절치 않다며 바로 거절해 버렸다고 한다. 민중의 이익과 민족의 당면과제를 해결하는 투쟁에 결합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우리의 문제는 어떻게 풀어야 하는지에 대해 고민하고 있는 현장 간부의 물음에 속 시원한 답은 자료나 전해진 내용 어디에도 없었다.
대의원대회 참석하기 전에 설레는 마음도 있고 궁금하기도 하여 지금 전체 분위기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알만한 분에게 물어보았다. 그 분은 “대대에 상정된 원안 외에, 연가파업 등의 투쟁방법이 약하니 총파업투쟁으로 강력하게 돌파해 나가야 한다고 보는 입장과 현실적 상황을 고려하여 우선 단체행동권을 유보하는 대신 노동2권과 해고자복직을 요구하고 단체행동권은 중장기적으로 요구하여야 한다는 입장이 있는 것 같다.”라는 설명을 한다. (그 외 대화내용은 생략하고)
대의원대회 장소에 도착하니 수 백 명의 동지들이 보였다. 전국에서 이렇게 많이 모여서 논의해 왔구나 하는 생각에 좀 부끄러워지기도 하였다. 대회장 한쪽에서는 노동3권 완정쟁취를 강력하게 주장하는 사람들이 동의서명을 받고 있고, 다른 한쪽에서는 파업 및 태업권을 제외한 단체행동권과 완전한 노동2권 쟁취 및 해고자 복직요구가 타당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동의서명을 받고 있었다.
회의가 시작되고 상반기 사업평가와 하반기 사업계획에 대한 설명이 있은 직후, 한 대의원이 올해도 우리 노조 자체문제에 대한 인식과 사업이 배치된 것이 (거의) 없다는 투로 문제제기하자 지도부는 ‘상정된 안건내용은 중앙위에서 결정한 내용이다.’라는 식으로 답변하는 것을 들었다. 순간적으로 나는 ‘그럼 원래 안건에는 있었는데 중앙위원회에서 삭제했다는 말인가? 내가 살펴 본 중앙위 자료에는 집회, 총투표, 연가파업에 대한 방법과 시기 밖에는 없었는데 내가 잘못 본 것인가? 아니면 자료에는 없었는데 논의는 되었었다는 말인가?’하는 의구심이 들었는데, 그 이후 물어 볼 기회를 놓쳐 아직도 정확히 모르겠다. 아님 내가 잘못 받아들인 결과인가?
대회 도중 총투표 또는 연가파업에 대한 수정제안에 이어 한 대의원이 단기적으로는 파업권을 유보한 단체행동권과 노동2권 및 해직자 복직을 쟁취하고, 파업권은 중장기적으로 쟁취하자는 수정제안을 발의하였다. 나는 속으로 ‘아! 이제 치열한 논쟁으로 시끄러워 지겠다.’라고 생각하는 순간, 위원장은 발의자에게 안건철회를 요청하였고 발의자는 아주(?) 싱겁게 철회해 버렸다. 이런 상황에 대해 위원장에게 항의하는 대의원과 이 안건을 논의하기 위한 대대를 조만간 개최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대의원이 몇몇 있었으나 이미 물 건너간 사태라고는 밖에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상황이 전개되었다. 순간 나는 사태가 어떻게 돌아가는 것인지 잘 이해되지 않아 어안이 벙벙해 졌다.
쉬는 시간에 밖에 나오니 모두들 제 각각으로 성토가 한창이다. 대략 ‘위원장이 수정안건을 철회하라고 요구할 수 있느냐?’는 등의 의견과 ‘어떻게 노동3권을 포기한다는 것과 설립신고를 하자는 의견을 제출할 수 있느냐?’는 의견의 두 부류로 나뉘어져 있었고, 또 다른 한편에서는 안건을 철회한 발의자에게 격렬하게 항의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 보니 수정안건은 표면적 내용상은 태업권과 파업권을 중장기적으로 쟁취하자는 것이었지 포기하자는 것이 아니었고, 당장 설립신고를 하자는 주장은 더더욱 아니었다. 그런데 비판하는 사람들은 단체행동권 포기와 설립신고 하는 것으로 단정하고 신랄한 비난을 집중하는 것에 이해가 잘 가지 않았다.
분명히 지난 7월쯤 민주노총을 통해 노사정위원회에 제출한 내용에도 단체행동권에 대해서는 완전보장이 아닌 공익사업장에 준하는 권한을 요구한 것으로 되어 있었던 것으로 아는데(대대에서 돌아와서 확인해 보니 그러함), 공익사업장에 준하는 단체행동권 요구가 완전한 노동3권 쟁취의 주장의 의미와 동일한 것인지 혼란스러워졌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이미 단체행동권에 대해서 일부 양보를 했는데 좀더 열어 놓고 논의해 보자는 것이, 그리고 단계적으로 완전한 노동기본권을 쟁취하자고 하는 제안이 그렇게 비판 받을 정도의 행동인가 하는 것에 의아해 졌다. 나는 그동안 우리가 민간노조 수준의 단체행동권을 주장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당장의 노동3권 완전쟁취 주장이 당연하다면 치열하게 논의해서 결의를 하면 되는 것 아닌가?라는 생각이 내내 떠나지 않았다.
그 이후에 제기된 총투표 및 총투쟁과 관련된 방법과 시기에 대한 수정안들이 제기되었으나 모두 부결되고 최종적으로 원안대로 가결되었다.
전세버스를 타고 돌아오는 내내 머리가 무거웠다.
총투표는 어떻게 치를 것인지? 순조롭게 치를 수 있을 것인지? 연가파업은 어떻게 진행될 것인지? 조합원은 어떻게 추동해야 할 것인지? 조합원은 과연 이러한 투쟁방법에 동의해 줄 것인지? 아니 나 자신부터 확신을 가지고 동참할 수 있을 것인지? 행자부를 등에 업은 기관측의 탄압과 분열공작은 나날이 교묘해 지는데 앞으로 어떻게 싸울 것인지 그리고 언제까지 이 상태가 지속되는 것인지? 올 하반기 잘 버티면 내년에는 상황이 바뀔 것인지? 무작정 이길 때까지 최후의 1인까지 싸운다는 임전무퇴 결사항전의 각오로 싸우면 우리의 조직을 지켜가면서 최종적으로는 우리가 승리하고 원하는 것을 얻게 되는 것인지? 승리하였을 때와 패배하였을 때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어떻게 하겠다는 것에 대한 계획은 있는 것인지? 민주노총 또는 공공연대의 투쟁에 결합하는 것이 우리 문제에 대한 투쟁 보다 우선하는 것인지? 그렇지 않다면 동시에 직접적인 해결책도 되는 것인지? 노동3권 쟁취라는 것이 과연 우리가 달성해야 할 목표인가 아니면 목표를 이루기 위한 도구인지? 노동3권은 어떤 어려움을 겪더라도 참고 인내하며 한꺼번에 쟁취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는 것이 타당한 것인지? 노동기본권 쟁취와 연금 구조조정 등의 근로조건 악화저지를 위한 정세전망과 이에 따른 투쟁의 전략전술은 우리 주체적 역량으로는 세울 수 없는 것인지? 이 버스에 타고 있는 대의원, 아니 참석했던 모든 대의원들은 얼마만큼의 신념과 확신을 가지고 돌아가는 것인지? 나 혼자만의 쓸데없는 걱정은 아닌지? 머리가 터질 것 같았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우리 투쟁의 명확한 쟁점은 무엇입니까? 언제 어떤 전략전술로 어디를 방어하고 또 어디를 공격하여 무엇을 얼마만큼 쟁취할 수 있습니까?
참으로 기우에 불과하고 어리석은 질문인가요? 정말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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