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직 위원장이 절망하며 탈퇴합니다.
지난 1년2개월 동안 저를 믿고 함께 투쟁해주신 조합원여러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존경을 표합니다.
우리는 법외노조임에도 사회적 교섭을 만들어 내었고, 공동투쟁본부를 결성해 100만 공무원들을 견인해 왔습니다. 시민사회단체에도 새로운 투쟁의 불을 지피기도 했습니다.
12만이 모인 11.1 여의도 집회 등 수차례의 대규모 집회, 새누리당안 전체공무원 찬반투표, 수많은 농성과 삭발, 단식, 전국동시총회 등 그간 해보지 못했던 다양한 대중투쟁을 조직했습니다. 투쟁의 과정도 너무나 소중했습니다.
비록 공무원연금은 ‘더 내고, 덜 받고, 늦게 받는’ 개혁이 되었지만 당초 새누리당안에 비해서는 공무원들의 불이익이 적었습니다. 연금 민영화 정책도 막았고, 신구세대 분리도 막았습니다. 무엇보다 소득재분배로 하위직연금을 최대한 보호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특히 공적연금 강화를 사회적의제화 해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50% 인상과 노인빈곤율 해소의 계기를 만들어냈습니다. 국민연금 인상 없이 공무원연금 유지는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보수현실화와 정년연장, 근속승진 등 인사정책 교섭구조도 만들었습니다. 당초 계획에는 없었지만 이 시대의 아픔인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을 가로막는 시행령 개정을 국회에서 행정부에 요구할 수 있는 국회법도 개정되었습니다.
조합원과 비전은 없고, 정파들만 활개 치는 전공노와 민주노총
5월2일 새벽 2시가 넘어 전공노를 대표한 사무처장은 ‘공무원연금 개혁-국민연금 강화-인사정책 제도개선’ 등 세 가지가 하나의 합의안으로 구성된 합의문에 잠정 서명하였습니다. 새벽시간대이고, 촌각을 다투는 국회논의 과정이고, 사회적 교섭으로서 직권조인으로 볼 수 없다고 하지만, 조합원의 뜻을 물어야 하는 최선의 절차가 생략되었습니다.
정파를 중심으로 직권조인으로 민주적 절차를 어겼다고 위원장 사퇴를 요구했습니다. 물론 강압에 의한 사퇴요구는 규약에서 정한 절차가 아닙니다. 오로지 모욕과 멸시만이 있었습니다.
중앙집행위원회에서는 권한이 없음에도 조합원의 결정도 없는 상태에서 인사정책 교섭이 포함된 합의안을 거부하였습니다. 일련의 과정에서 가슴 아픈 것은 우리가 줄곧 외쳐온 공적연금 강화를 걷어차면서 국민들을 기만했고, 조합원과 국민에 대한 진정성을 찾아보기 어려웠습니다.
이번 합의안은 진행형인 교섭입니다. 국민연금 강화 투쟁이 남았고, 조합원들의 큰 관심사인 인사정책 교섭이 남았습니다. 따라서 위원장은 조합원의 뜻을 묻는 것이 규약과 민주노조의 정신에 부합된다고 판단하여 조합원 찬반투표 여부를 결정하는 전국대의원대회를 소집했습니다.
역시나 결과는 정파들의 연합으로 조합원의 뜻을 묻는 투표가 부결되었습니다. 충격적인 것은 그토록 부르짖는 조합원의 의사를 묻는 민주적 절차가 부정되었음에도 승리의 구호와 노래, 축배가 이어졌습니다. 과연 누구를 위한, 무엇을 위한 승리였을까요?
전공노의 상급단체인 민주노총은 어떠했습니까? 연금 투쟁 전반에서 전혀 도움이 되지 못했음에도 공무원노조의 갈등을 조장하는 짓만 했습니다. 정파들끼리의 교감은 있었을지 몰라도 조합원들과의 교감은 없었습니다. 심지어 민주노총이 한 번도 해내지 못한 성과인 국민연금 강화라는 의제를 받지도 못하고 거부하는 어처구니없는 행태를 보였습니다.
노동시장 구조개악 저지, 최저임금 1만원 인상 등을 위한 민주노총의 투쟁은 구호만 난무했지 속절없이 밀리고만 있습니다. 정파와 민주노총에 과연 노동자들의 삶에 대한 진지한 고민과 비전이 있는지 묻고 싶습니다.
조합원 중심의 노조, 국민의 노조, 정책노조는 여전히 가야할 길
조합원이 없는 민주노조는 없습니다. 국민의 지지가 없는 대중운동은 살아남을 수 없습니다. 정책과 실력은 없고 뻥파업과 입투쟁만 외치는 노조는 설자리가 없습니다.
공무원노조는 정부의 정책을 입안하고 집행하는 공무원노동자로서, 국민들과 살을 부대끼는 봉사자로서 노동운동의 비전을 명확히 견지하고 활동해야 합니다. 조합원 중심의 노조, 국민의 노조, 정책노조가 그 길입니다.
저는 줄곧 이 길을 걷고자 노력했습니다. 위원장으로서 전공노를 정책노조로서 실력을 키우는 사업과 국민의 삶을 책임지는 활동을 모색해 왔습니다. 공적연금 강화를 사회적 의제로 만든 것도 과정의 하나였습니다. 앞으로도 포기하지 않을 것이고 어떤 상황에서든 더 매진할 것입니다.
합법노조(설립신고), 민주노총 탈퇴, 정파 척결
전공노 13년은 법외노조로서 탄압의 역사였습니다. 정부의 탄압을 막는데 급급했습니다. 당연히 조합원들의 노동조건 개선에 소홀해 질 수 밖에 없었고, 이렇다 할 역할도 하기가 어려웠습니다.
정치권의 지나친 외풍에 공직사회는 직업공무원제의 근간이 흔들리고 정책이 왜곡되는 지경에 이르고 있습니다. 공무원의 노동조건도 갈수록 열악해지고 있습니다. 국민들의 삶은 더욱 나빠지고 있습니다.
공무원노조가 바로서야 합니다. 법외노조의 한계를 극복하고 합법노조로서 공무원들의 노동조건, 국민들의 삶을 유익하게 만드는 정부정책 수립에 당당하게 개입해야 합니다.
국가의 노동자 대표조직으로서 위상은 유명무실하고, 노동자 서민을 위한 정책은 찾아보기 어렵고, 조합원은 안중에도 없는 종파(정파)들의 이전투구의 장이 된 민주노총은 환골탈태해야 합니다.
십수년을 지나는 공무원노동운동도 혁신의 요구가 빗발치고 있습니다. 시대흐름을 외면하고 20년, 30년전 사고에 갇힌 정파에 대대적인 척결과 쇄신의 바람이 불어야 합니다.
조직이 클수록 다양한 목소리와 갈등은 불가피합니다. 그러나 노동운동의 대의가 전제되어야 합니다. 운동방향이 없는 노조, 조합원이 주인이 아닌 정파(의견그룹)가 주인 된 노조, 노동자와 서민을 수단화하는 대중조직은 빈껍데기에 불과합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조합의 가나안땅은 존재하지 않을지 모릅니다. 그러함에도 대의를 잃은 노동조합은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이기에 늘 변화와 혁신을 해야 합니다. 고단한 여정일지라도 꾸준히 희망의 길을 모색해야 합니다. 바로 그 길이 노동조합의 가나안이 될 것이라 확신합니다.
아직도 연금 투쟁은 진행형입니다.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50% 인상과 노인빈곤율 해소를 위해, 공무원의 노동조건 개선을 위한 인사정책 제도 개선 투쟁을 책임 있게 마무리 해 나가겠습니다.
위원장은 투쟁의 최종 책임을 마땅히 져야 합니다. 현재 여러 건의 고발과 소환, 징계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해고가 될 수도 있겠지만 구차하게 조직에 빌붙어 생계비에 연연해 희망을 스스로 꺾는 어리석은 자가 되지 않을 것입니다.
저는 절망을 털어내고 희망을 찾아 새 길을 갈 것입니다. 전공노와 민주노총을 탈퇴합니다. 역경이 앞을 가로막을지라도 노동조합의 가나안을 찾는 여정을 포기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동안 믿고 따라와 주신 조합원여러분들께 고개 숙여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조합원여러분들을 사랑하고 굳게 믿습니다. 그리고 죄송합니다.
2015. 6. 3.
위원장 이 충 재 올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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