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친구는 나와 동갑인데 28년 전 같은 동사무소에서 근무한 적이 있다.
그 때 나는 총각이었고 그 친구는 이미 결혼을 하여 애가 있었다.
우리 둘과 2살 연배인 또 한 동료가 있었는데
나름 죽이 맞아 그의 매일 퇴근 후면 셋이서 어울려 영원할 것 같은 청춘을 노래하곤 했다.
그 친구가 지난해 7. 1.자로 동에서 올라와 ○○과장 직책을 맡았는데
공교롭게도 온지 얼마되지 않아 집중호우가 쏟아져 우리구가 쑥대밭이 되었다.
도로변은 온통 물바다였고 가옥 침수 등으로 피해가 겉잡을 수 없이 커졌다.
그 와중에도 친구는 자신에게 주어진 책무를 완수하느라 최선을 다하였으나
처리과정에서 부서 직원들과 직속상관 사이에서 어려움을 겪으면서
무척 힘들어 하는 모습을 보이곤 했었다.
그러더니 급기야는 마무리를 다하지 못하고 그만 명퇴를 하고 말았다.
그 후 나는 두세번 친구와 저녁 술자리를 하였다.
말은 그만둔 것을 시원하다고 하면서도 진한 아쉬움이 베어 있는 눈치였다.
그의 고향은 밀양이고 고향엔 선친으로부터 물려 받은 조그만 논밭이 있었는데
명퇴할 즈음 이미 귀농을 염두에 두었는지
고향을 오고가며 소일 삼아 계절 채소를 심었던 모양이다.
집은 명장초등학교 옆인데 몇일 전 고향에서 곧장 내려 왔다며 전화가 왔길래
그러면 얼굴이나 한번 보자고 퇴근시간에 맞춰 사무실로 내려 오라고 하였더니
내려 와서는 본인이 직접 키운 무공해 농작물이라며 바구니를 내미는 것이었다.
그날 우리는 퇴직하신 선배 한분을 연락하여 반주를 곁들인 저녁을 하고
2차 노래방까지 섭렵하고는 각자 집을 향해 자리를 떴다.
결국 그날은 그 보자기를 집에 가지고 가지 못해 사무실에 두고
다음날 갖고 가서 펼쳐보니 감자, 자주색 양파, 치커리, 깻잎 등이 들어 있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아래쪽엔 감자와 양파가 들어 있었고 위쪽에는 신문지로 곱게 싼 깻잎, 치커리 등이
채곡채곡 깨끗이 정돈된 채로 정갈하게 아주 싱싱한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마누라도 그 것을 보고 감탄을 자아내며 보낸이의 마음 씀씀이에 감복하는 것 같았다.
비록 금전으로 계산하면 그리 크진 않겠지만
마음으로 전해지는 그 온정 가득한 선물 보따리를 보며 나는 한동안 말문을 잃었다.
친구야! 고맙다. 그 마음 두고두고 잊지 않을께.
정말 일처리에 있어서는 어느 누구도 따를 수 없는 똑소리 나는 친구였는데
끝까지 함께하지 못하고 먼저 공직을 떠나 보낸데 대해 아쉬움이 크고
왠지 나도 떠나는데 일조를 한 것 같아 어깨가 무거워 짐을 느꼈다.
친구야! 나도 이젠 1년 남짓 남았는데 그동안 네 몫까지 다 할께.
항상 건강하고 가족과 함께 네가 소망하는 소박한 꿈 펼치며 소중한 나날들 되길 바란다.
안녕^^^
2015. 6.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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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 (15/06/24/ 14:03) 글을 읽는 내내 떠나신 과장님의 약간은 쑥스러운 듯 환한 웃음이 떠오릅니다. 후배에겐 무심한 듯 다정하셨던 분...밀양에서 행복하신 시간 보내시길 저도 함께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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