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연합뉴스) 김선호 기자 = 부산시 감사실 출신의 한 구청 간부가 부하 직원 명의로 딸 결혼식용 은행계좌를 개설해 축의금이 입금되면 현금으로 찾아오라는 일종의 '축의금 세탁'을 지시해 물의를 빚고 있다.
특히 구청은 간부의 부당한 지시와 공무원 행동강령 위반 사실을 확인하고도 별다른 책임 추궁이나 징계 없이 서둘러 사건을 덮어 빈축을 사고 있다.
이번 달 말 딸 혼사를 치르는 부산 영도구청 A과장은 최근 부하 직원에게 200∼300명의 명단을 주며 딸 결혼날짜·장소와 함께 본인 명의로 개설한 은행계좌번호를 문자메시지로 전송하라고 지시했다.
부산 영도구청
부하 직원이 부담스러워하자 A과장은 다른 직원에게 지시해 은행계좌를 개설해 문자메시지를 보내도록 했다.
A과장은 이 직원에게 계좌로 축의금이 입금되면 은행에서 현금을 찾아 자신에게 가지고 오라고 말했다.
앞서 A과장은 근무시간에 부하 직원들에게 딸 결혼식 청첩장도 부치도록 했다.
이 과정에서 A과장이 직원에게 부당한 지시를 했다는 투서가 기획감사실에 접수돼 11일 진상조사가 진행됐다.
영도구는 A과장과 해당 직원들을 불러 투서내용의 진위를 확인한 결과 모두 사실임을 확인하고 직원 명의로 만든 은행계좌를 즉각 해지하는 선에서 투서사건을 급하게 마무리했다.
구는 직원 계좌로 축의금이 입금되지 않았고 A과장이 해당 직원에게 사과해 징계위원회에 회부될 만한 사안은 아니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구청 내부에서는 A과장이 근무시간에 부하 직원에게 딸 결혼식 통보 문자메시지를 보내라는 부당한 사적 지시를 한 것은 물론 '축의금 세탁'까지 하려 했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과거 직무관련자 등으로부터 축의금을 직접 받기 부담스러워 한 A과장이 직원 계좌로 축의금을 대신 받고 나중에 문제가 생겼을 경우 빠져나갈 구멍을 마련한 것 아니냐는 것이다.
실제 A과장이 문자메시지를 보내라고 직원에게 건넨 명단에는 수십 곳의 건설업체를 포함해 현재 영도구 공사나 사업을 맡은 시공업체도 상당수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공무원 행동강령은 공무원이 직무관련자에게 경조사를 알려서는 안 된다고 명시하고 있다.
구청 역시 직원에게 부당한 지시를 내리고 공무원으로서 해서는 안될 행위를 한 A과장에게 책임을 묻기는 커녕 오히려 두둔하고 감싼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구청의 한 공무원은 "A과장은 앞서 공무원의 비위를 적발하고 청렴을 강조하는 부산시 감사관실에서 근무했다"며 "이번 일을 유야무야 덮을 것이 아니라 징계위원회에 회부해 책임을 묻고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A과장은 "주변에서 관행적으로 다른 직원 명의로 축의금을 받고 있으며, 제 통장 번호를 적기가 쑥스러워서 그랬다"며 "물의를 빚어 죄송하고 잘못을 뉘우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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