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말이란 묘한 재주꾼이다. 같은 말이라도 이렇게 신선할 수 있을까. 한여름 갈증 끝에 시원한 사이다 맛이다.
지난 20일 오후 5시경 고속철도(KTX) 212호 특실이 무대다. 김 장관은 대구에서 일정을 마치고 동대구역에서 열차에 올랐다.
이날 비슷한 시각 한 남성은 대전역에서 이 열차를 탔다. 이 남성은 여성승무원에게 항의를 하는 등 거칠게 몰아붙였다. 여승무원을 따라다니며 화를 내고 위협적인 행동을 취한 것.
자신의 좌석에 다른 사람이 않아있다는 것이 이 남성이 화가 난 이유다. 이 남성은 여성승무원에게 다짜고짜 따졌다. 핏대를 세운 고함소리는 옆 승객들이 무안할 지경이다. 그런데, 여성승무원 확인 결과 이 남성 자신의 실수인 것으로 드러났다. 문제의 이 남성은 당초 예약된 열차의 지연으로 비슷한 시간에 도착한 다른 열차를 탄 것으로 확인된 것.
‘적반하장(賊反荷杖)’의 이 남성은 되레 승무원을 나무라고 호통을 치는 등 무례했다. 이 광경을 목격한 김 장관이 뛰어들었다. 김 장관은 이 남성에게 “왜 잘못도 없는 여승무원을 따라다니며 무안을 주고 행패를 부리냐”며 힐책했다. 그러자 이 남성은 김 장관을 노려보며 “당신이 뭔데 끼어들어, 당신이 공무원이라도 되나?”고 따졌다. 이 때 김 장관은 “그래, 나 공무원이다”고 거침없이 되 받아쳤다.
한 진상승객과의 순간적 충돌이 전국으로 퍼졌다. 이 광경을 지켜보던 옆 승객들이 목격담을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 올린 것. 부드럽고 조용한 이미지의 김 장관의 카리스마가 번쩍한 이 일화, 상상만 해도 가슴 후련한 청량사이다 맛이다. 지난 1월 기자는 김 장관과 통화할 일이 있었다. ‘사랑의 일기 연수원’에서 주최한 일기 수상자와 관련해 수상 인터뷰가 필요했다.
고위급 인사, 그 것도 행안부 장관과의 인터뷰는 기대를 걸지 않았다. 부속실을 통해 답변을 주겠거니 하는 생각으로 김 장관의 핸드폰 번호를 눌렀다.
그런데, 뜻밖에도 김 장관은 직접전화를 받았다. 자신을 밝힌 상대의 전화 목소리는 “네 김부겸 입니다”였다. 중저음의 부드럽고 나직한 목소리.
그와의 짧은 인터뷰였지만 울림은 컸다. 지방기자의 개인 인터뷰도 존중해주는 겸손함에 놀라웠다. 이번 열차에서 김 장관의 일화는 촌극(寸劇) 에 불과하다. 그러나 “나, 공무원이다”라는 순간적 기지는 불의를 참지 못하는 정의가 내포돼 있다. 그러기에 많은 국민들이 공감하는 것이 아닐까.
한국철도공사의 대응도 흐뭇하다. 소란을 피운 이 남성을 경찰에 인계하기 않고 조용히 마무리했다. 그 장관에 걸맞은 대응이다. 조그만 권력이라도 손에 쥐면 ‘완장’을 찬 공직자들이 얼마나 많은가. 수행원 없이 혼자 열차를 타고 일정을 소화한 김 장관, 나름 민정을 살피려는 그의 속 깊은 시찰이 아닐까.
어린이들의 손 편지에 아이들 이름을 하나하나 불러가며 화답한 그가 난폭한 ‘갑질’의 남성에게 가차 없이 일격을 가한 용기가 빛나고 있다. 김 장관의 따뜻하고 부드러운 감성 속 카리스마가 참 멋져 보인다. 김 장관의 용기가 황당했던 여성승무원의 위로가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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