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공무원노동조합 부산지역본부 동래구지부

따뜻한 맥주와 차거운 샌드위치

[시민포럼] 투명성 제고, 공직 사회 먼저 나서라

2006/10/9

이지문 기자

몇 년 전 독일의 경제장관이 공무로 얻은 항공 마일리지를 사용(私用)했다는 이유로 사임한 사건은 외국의 엄격한 공직윤리의 한 사례로 소개되어 화제가 되었는데, 우리 공직사회에서도 이르면 내년부터는 공무로 취득한 항공사 마일리지를 가족여행 등 개인적으로 이용하는 것이 금지될 것으로 보인다.

<시민의신문DB자료사진> 이정민기자

경실련 회원들이 지난해 4월 서울 명동에서 '윗물맑게하기 시민행동-공직윤리강화 약속이행 촉구의 날'캠페인을 열어 공직자 땅 투기 근절과 공직자윤리법 전면개정을 촉구하고 있다.

국가청렴위원회는 직무 관련자와의 골프, 사행성 오락과 함께 마일리지의 사적 사용을 금지하고 이를 위반할 경우 징계조치토록 하는 내용을 포함하는 공무원행동강령 개정안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경제규모로는 세계 11위이지만, 국제투명성기구가 발표한 2005년도 국가청렴도에서는 여전히 159개국 중 40위 수준에 머물고 있는 우리 사회의 투명성 지수를 높이기 위해서 먼저 공직사회가 스스로 비위를 예방할 수 있는 탄탄한 ‘윤리근육’을 키워나갈 수 있도록 구체적인 실천방안을 담은 행동강령을 강화하는 것은 바람직하다.

그러나 최근 청렴위 자료에 따르면 2003년 5월 행동강령이 시행된 이후 올 6월까지 만 3년 동안 총 2,463명이 위반했으며, 이 중 네 명 중 세 명꼴인 1818명이 금품 및 향응 수수로 적발된 것으로 드러났다. 이것은 공직이라는 자리를 이용해 인사라는 명목 하에 돈 봉투를, 성의라는 미명 하에 술 접대를 받는 등 아직도 행동강령을 반드시 지켜야 할 행위준칙이 아니라 지키면 좋고 안 지켜도 괜찮은 것 정도로 인식하는 공무원이 여전히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물론 공직사회 일각에서는 현행 행동강령 규정이 현실을 무시하고 너무 엄격하여 오히려 지킬 수 없음에도 징계까지 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식으로 불만을 토로하기도 한다.

그러나 청렴도면에서 앞서 있는 나라들의 공직윤리 사례만 봐도 이러한 이의제기가 더 이상 설득력이 없다는 것을 잘 알 수 있다. 네덜란드 내무장관은 로테르담의 시장으로 16년 간 재직하는 동안 총 400여만원의 판공비를 개인 용도로 사용했다는 이유로 사임했으며, 명예퇴직을 하루 앞둔 홍콩의 출판인쇄국장은 책을 출판하면서 출판업자로부터 무료로 용지를 공급받았다는 사유로 파면되었고, 호주 과학성장관은 100만원 정도의 여행경비를 잘못 계산하는 바람에 그 자리에서 물려나야만 했다. 우리나라에서도 얼마 전 단속 무마 대가로 건축업자로부터 30만원을 받은 경찰관의 해임이 정당하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오기도 했다.

“오랜 기간 국가를 위해 봉사해온 공직자가 이 정도를 가지고 이렇게 가혹한 대가를 치르는 것은 너무 심한 것이 아니냐 ” 하는 생각을 하는 이들이 있을 수 있겠지만, 공직자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액수’의 문제가 아니라 공직자에 대한 신뢰를 저하시키는 ‘금품 및 향응’을 받은 자체가 문제라는 인식이 이제는 우리 사회의 지배적인 원칙이 되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적용이 하위직 공무원뿐만 아니라 고위직에 대해서도 추상같아야 한다는 점에서, 청렴위가 정무직 및 선출직 고위 공직자의 행동강령 위반 행위에 대해서도 징계할 수 있도록 개정을 준비하는 것은 뒤늦은 감은 있지만 당연하다 할 것이다.

민족 최대의 명절인 추석이 며칠전 지났다. 시내 도처에서는 형형색색으로 포장된 선물 상자를 배달하는 차량을 쉽게 볼 수 있었다. 그 많은 선물 중에는 관행과 미풍양속이라는 미명으로 공직자에게 관례적으로 전해지는 갈비세트도, 고급양주도 들어있을 줄 모른다.

전국공무원노동조합에서는 이러한 명절 선물 관행이 청탁의 방법으로 변질되어 온갖 부정부패의 연결 고리가 되어 왔다는 인식 아래 매 설날, 추석시기마다 ‘유관 기업체에 선물 금지 협조 서한문 발송, 기관 정문에 선물 및 금품 수수 금지 현수막 게시, 조합원 자정선언’ 등을 전개해 가시적인 성과를 얻어낸 바 있다. 그러나 아직도 촌지, 떡값이라는 이름으로 은밀하게 건네지는 금품과 선물을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공직자가 있다면, 다음 질문을 자기 스스로한테 해보기를 바란다.

“내가 공직이라는 이 자리에 있지 않아도 그 사람이 나한테 그것을 주었을까 ”

만일 자신이 ‘아니요’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이 설령 만원 정도의 치약세트라 하더라도 받지 말아야 할 것이다.

국가청렴도 순위에서 늘 1, 2위를 도맡아 하는 핀란드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공무원에게 접대할 수 있는 것은 ‘따뜻한 맥주와 차가운 샌드위치’밖에 없다”라는 이 한 문장을 우리 공직자뿐만 아니라 시민들도 마음속에 담아보는 추석 명절이 되었기를 기대한다.

이지문

전국공무원노동조합 정책연구원

2006년 10월 9일 오전 10시 35분에 작성한 기사입니다.
시민의신문 제 670호 5면에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