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FTA 광고, 대통령 쌈짓돈으로 만들었나?"
TV 광고를 보던 농민이 밥상을 엎으며 하는 말 " 테레비 꺼!"
강기희(gihi307) 기자
▲ 수확도 못하고 버려진 배추, 농민의 마음이 버려진 배추와 다를 바 없다.
ⓒ 강기희
강원도 정선의 겨울 아침은 더디게 온다. 느릿느릿 산을 넘는 햇살은 정선 사람들의 걸음걸이와 많이 닮았다. 늦은 아침을 먹는 시간 TV에서는 아침 뉴스가 진행되고 있다. 한미FTA협상에 관한 보도가 있고 오늘은 전국적으로 비나 눈이 올 것이라는 보도도 있다.
정계 개편의 움직임에 대해서도 말이 많다. 기자의 멘트는 반노와 친노의 대립에 뉴스의 초점이 맞춰진다. 지난 번 대통령 선거가 치러지기 전에 들었던 뉴스와 다르지 않다. 정치권의 역사는 언제나 되풀이 된다.
뉴스 중간에 어제 있었던 한미FTA반대 집회에 관한 소식도 나온다. 화면엔 도심의 거리를 점거한 집회 참가자들의 모습이 잡힌다. 기자는 농민과 노동자들이 차가운 거리로 나온 이유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다. 대신 불법 집회를 막지 못한 경찰의 무능을 질타하더니 어김없이 시민에게 카메라를 들이댄다.
"집회도 좋고 하지만 이렇게 시민들의 발을 묶는 건 문제가 있다고 봐요. 벌써 몇 시간 째 꼼짝도 못하고 있잖아요."
운전석에 앉아 있는 시민의 말이 시골 구석의 안방까지 들려온다. 짜증섞인 시민의 말에 함께 식사를 하던 농민이 "젠장, 밥 체하것네"라며 한마디 한다.
"힘없고 가난한 서민들을 보호하기 위해 나선 사람들인데 그거 좀 이해 못하고 길 좀 막힌다고 저러면 되겠어? 하여튼 먹고 살만한 놈들은 지들밖에 모른다니까."
그렇게 말하는 농민의 입에서 밥알이 튀어 나온다. 흥분이 쉽게 가라앉지 않는지 냉수를 들이킨다. 농민의 심정을 이해해주는 이들이 얼마나 될까 싶다. 경쟁력이 확보되지 못한 상태에서 미국 농산물이 물밀 듯 들어오면 농민들은 고사하고 말 것이다.
▲ 말라 비틀어진 농민의 마음을 누가 위로해 줄까.
ⓒ 강기희
농민이 반주를 찾는다. TV를 지켜보자니 울화통이 터져 술이라도 한잔 해야겠단다. 몇 잔의 술이 비워질 무렵 뉴스가 끝난다. 이어 광고가 나온다. 한미 FTA 협상만이 위기에 처한 나라를 구할 수 있다는 내용이다.
광고 문구에는 광개토대왕과 장보고도 등장한다. 한미FTA협상만이 광개토대왕이나 장보고처럼 영역을 넓히고 잘 살게 할 수 있다는 대안이란다. 국민들의 의식 수준을 어찌 알고 저런 광고를 하는지 이해가 안 된다.
"FTA가 어찌 광개토대왕의 업적이나 장보고의 업적과 같단 말이여. 말도 안 되는 소릴 하고 자빠졌네. 광개토대왕과 장보고는 민심이 도왔고 한미FTA는 다들 반대하는 일이잖어. 그게 어찌 비교가 된단 말여. 노무현이가 국민 알기를 흑싸리껍데기로 아는 게 분명혀."
"농민과 노동자들이 저렇게 반대하는데 밀어붙이는 이유를 모르겠군."
나도 한마디 거든다. 이 땅에서 민중이라는 이름으로 살아가기가 참으로 힘들다.
"배부른 놈들 비위 맞추자는 거겠지. 우리 같은 농투성이야 굶어죽든 얼어 죽든 이 땅에서 필요없다는 거 아니겠어?"
▲ 버려진 밭, 땅을 지켜야할 농민들이 자꾸만 떠난다. 몇 년 후면 시골이 텅 비게 될지도 모른다.
ⓒ 강기희
농민의 술잔이 빠르게 비워진다. 속상한 농민의 마음을 달래주기엔 내 마음도 허접하다. 식은 찌개를 데우는데 농민이 "에이씨!"하며 밥상을 엎는다. 상 위에 놓여있던 그릇들이 방바닥을 뒹군다. 깨진 접시가 대접받지 못하고 있는 농민들의 신세 같다. 농민이 화를 참지 못하고 소리친다.
"저런 놈의 광고는 보기도 싫으니 테레비 꺼!"
농민의 말에 서둘러 TV를 끈다.
"근데 저 한미FTA 광고는 대통령 쌈짓돈으로 만들었나? 갑자기 그게 궁금하네."
"그럴 리야 있겠어? 국민이 낸 혈세로 만들었겠지. 앞으론 세금도 내지 말아야겠어. 저런데 쓰라고 내는 거 아니잖어."
농민의 음성이 거칠다. 순하게만 살아오던 농민이 요즘엔 울컥울컥 화를 잘 낸다. 살아가기 힘든 탓이다. 예로부터 농민이 분노하면 나라가 뒤집어졌는데, 이 나라도 그럴 때가 된 모양이다. 국민이 원하지 않는 걸 밀어붙이다 손든 왕이나 대통령이 한 둘이 아님을 참여정부가 알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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