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공무원노동조합 부산지역본부 동래구지부

[오마이뉴스 이화영 기자]

▲ '아기 호송 중'( )이란 문구를 붙인 차량(사진 위)과 초보운전임을 알리고 있는 차량(사진 아래).

자동차를 운전하다보면 '도로 위의 시한폭탄 1km 이내 접근 금지', '밥은 하고 나왔어요', '아기가 타고 있어요' 등의 문구가 붙은 차량을 볼 수 있다. 또한 '아가씨 보호 차량'이란 익살스런 문구가 쓰인 다방의 차 배달 차량도 눈에 띈다.

이런 문구를 부착하고 운전하는 이유는 다른 운전자들에게 주의나 배려를 부탁하는 무언의 메시지다. 그러나 이러한 배려 요청이 제대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경우가 여전히 많은 듯하다.

자가 운전자인 이남경(38·가명)씨는 5년 전 '초보운전'이란 문구를 달고 처음 도로로 나왔을 때 전쟁터에 내몰린 듯한 느낌을 받았다고 회고했다.

50분 거리인 직장을 자가용으로 출퇴근할 당시 시속 20~30km로 달리는 포클레인을 뒤따르는 상황에 놓였다고 한다.

이씨는 방향지시등을 켜고 포클레인을 추월하려 했으나, 뒤따르는 자동차들이 이를 무시했다. 또한 추월하려 방향 전환을 시도하면 전조등을 깜빡이고 경고음을 울려 1차로 진입을 막았다.

결국 이를 안타깝게 여긴 포클레인 운전자가 갓길로 비켜줘 1시간 30분 만에 집으로 갈 수 있었다고 전했다.

늘어나는 노인 운전자, 늘지 않는 배려

초보운전자 외에도, 배려나 제도적 뒷받침이 인색한 대표적인 경우가 최근 노령사회에 접어들면서 부쩍 늘어난 노인 운전자들이다. 다음은 이씨가 전한 사례다.

장거리 운전에 자신이 없던 이씨는 지난 주말 두 아이와 함께 기차를 타고 친정인 부산으로 향했다.

부산역에 마중 나온 이씨의 아버지(69)는 별로 변한 게 없어 보였지만, 역에서 집으로 향하는 50분은 불안의 연속이었다. 이유는 교통 상황이 혼잡한 시내에서 떨어지는 이씨의 아버지의 운전 감각 때문이었다. 60대 초반까지만 해도 뛰어난 운전 실력을 자랑하던 이씨의 아버지였다.

이튿날 이씨는 오랜만에 만난 딸과 손자들에게 신선한 회를 먹이고 싶어 하는 아버지를 따라 나섰다. 일요일 점심때여서인지 부산 인근의 기장시장 근처는 굉장히 복잡했고 도로는 주차장을 방불케 했다. 그러던 중 순간적인 상황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때문인지 맞은편의 한 운전자가 이씨가 타고 있는 차량을 향해 욕을 하며 지나쳤다.

운전을 하고 있던 이씨의 아버지는 못 본 듯했다. 아니, 이씨는 차라리 보지 못했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하다. 운전실력 때문에 욕을 얻어먹는 아버지를 보고 있자니, 자신이 운전하다 욕을 얻어먹은 것보다 더 마음이 안 좋았기 때문이다. 아이들과 시장구경을 하고 싱싱한 회를 떠서 집으로 돌아와 맛있게 먹는 딸과 손자를 보고 좋아하시는 아버지 모습을 보고서야 이씨는 맘이 풀렸다.

남동생에게 조심스럽게 "아버지, 운전하시는 거 옛날 같지 않지 "라고 묻자 남동생이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은퇴한 뒤 특별한 소일거리도 없는 아버지께 운전 그만하시라고 하기가 죄송해서 차마 입 밖에 내지 못했다고 한다. 고민하다가 돌아오는 날 부산역에 태워다 준 아버지께 이씨는 이렇게 말씀드렸다.

"아버지, 차에다 '경로운전' 이라고 붙이고 다니세요."
"그게 뭐냐 "
"예, 요즘에 초보운전처럼 노인들이 운전하는 차에 그렇게 붙이고 다니거든요."

그런 것이 있냐고 묻는 아버지를 바라보며 웃어보였지만 이씨는 밀려오는 슬픔을 어쩔 수 없었다.

지자체에서 '경로운전', '효도운전' 지원해야

노인전문병원인 연세노블병원의 조항석 원장은 "운전에서 중요시되는 주의력, 시공간 기능, 집행능력 등의 인지기능은 30대에 정점을 이룬 후 70대 전후 감소하기 시작한다"며 "논리적 사고, 추상적 사고, 변화에 대한 적응능력 등의 집행기능도 떨어져 노인운전자들의 경우 순간 상황에 신속히 대응하지 못하는 결과로 이어진다"고 진단했다.

이어 "노화로 인해 운전을 못하게 된 경우 상실감 및 박탈감은 상대적"이라며 "운전이 삶에 필수적이고 중요하셨던 분들은 정도가 심할 경우 그 스트레스가 당뇨, 중풍, 고혈압, 암 등 질병의 유발요인이나 악화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전했다.

조 원장은 "노인들 스스로 자신을 지키려는 노력이 중요하고 전문가와 상담해 지속적으로 자신을 관리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도로교통안전관리공단에서 공개한 연령층별 교통사고 통계에 따르면, 노인운전자들의 교통사고율은 꾸준한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이는 고령사회에 접어들면서 노인운전들이 늘고 있음을 반증해주고 있다.

하지만 2005년 기준으로 전체 사고건수 21만4171건 중 61세 이상 운전자의 사고건수는 1만2584건으로 전체 사고건수의 5.8%에 불과한 것으로 조사됐다. 다른 연령층 운전들에 비해 노인운전자들이 상대적으로 안전운전을 하고 있음을 나타내 주는 결과다.

'나이 들면 운전 안 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이도 있겠지만, 사회적으로 활동영역이 좁아지는 어르신들에게는 운전 포기가 큰 상실일 수 있다. 자치단체에서 젊은 운전자들이 쉽게 알아볼 수 있도록 '경로운전'이나 '효도운전' 등의 문구가 쓰인 스티커를 어르신 운전들에게 나눠주는 것도 좋은 지원책 중 하나다.

또한 교통관련 관계기관에서 실시하는 교육에서 초보운전자와 여성, 장애인 운전자는 물론 노인 운전자를 배려하는 강의를 하는 것도 필요하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도로에서 어른들을 공경하고 양보하려는 젊은 운전자들의 마음이다. 성숙된 운전자들의 양심을 기대한다.

▲ 도로교통안전관리공단에서 공개한 연령층별 교통사고 통계자료.

덧붙이는 글
이화영 기자는 공무원노조에서 일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