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공무원노동조합 부산지역본부 동래구지부

20일 오후 4시 경기도 고양시 일산병원 앞 사거리. 양손에 세탁물을 가득 담은 비닐봉투를 잔뜩 들고 근처 아파트에서 걸어오고 있는 석영인(여, 33)씨를 만날 수 있었다. 수거한 세탁물을 세탁소에 놔둔 그는 드라이크리닝 마친 옷을 배달하러 다시 나갔다가 40분 후에야 돌아왔다.
석씨는 지난 11일 민중총궐기에 참가했다가 구속된 양일석(35)씨의 부인이다.

사진더보기

남편과 함께 운영하는 세탁소에서 세탁물을 배달하러 가는 석영인씨

지난 11일에는 서울에서 민중총궐기가 열렸다. 경찰이 총궐기를 불법집회로 규정하고 지역에서부터 원천봉쇄에 나섰지만 4만이 넘는 민중들이 서울시청 앞에 모였다. 경찰의 원천봉쇄를 뚫고 민중충궐기를 성사시키는 과정에서 경찰은 전국에서 141명을 강제 연행해 이중 3명을 구속하고 나머지 138명 모두를 훈방이 아닌 불구속 입건했다. 서울에서만 125명이 연행되고 1명이 구속됐다. 이 유일한 구속자 한명이 양일석씨다.

석씨 부부는 11일 총궐기에 아이들을 모두 데리고 함께 참가하려고 했다. 그런데 부인 석씨가 걷다가 발가락을 부딪쳐 금이 가는 바람에 남편 혼자 총궐기에 참가했다.

윗옷이 벗겨져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구속된 양일석씨

11일 남편 양씨는 여의도에서 있었던 지인의 결혼식에 참석한 후 차를 충정로에 주차하고 고양시 깃발을 찾아 걷고 있었다. 모든 도로는 전경들에게 막혀있었고 겨우 한명씩만 통과시켜 주고 있었다. 낮 2시경 인도를 지나고 있는데 윗몸이 벗겨진 사람이 전경들에게 구타를 당하며 끌려가고 있었다. 양씨는 경찰의 태도가 너무 심하다고 생각하고 이를 뜯어 말렸다. 전경들과 엉키면서 윗옷이 벗겨진 사람은 다행히 빠져나갔지만 양씨가 대신 붙들렸다.

양씨는 전경들에게 끌려가며 밟히고 저항하는 과정에서 윗옷이 벗겨졌다. 연행될 때는 옷을 입고 있었지만 전경들에게 끌려가는 과정에서 벗겨진 것이다. 이것이 양씨의 구속사유가 됐다. 당시 전경 한명이 시위대와의 마찰과정에서 팔이 부러졌는데 이 전경이 ‘윗옷이 벗겨진 사람이 자신을 때렸다’고 진술한 것이다.

졸지에 양씨는 윗옷이 벗겨져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전경의 팔을 부러뜨린 폭력시위대가 됐고 이날 서울에서 연행된 125명중 유일하게 구속됐다.

구속된 양일석씨가 운영하는 세탁소에는 밀린 세탁물들이 가득했다. 정년을 앞두고 퇴직한 한 할아버지가 소일거리 삼아 다림질만 하며 일을 할 뿐 세탁, 수선, 배달 일을 도맡아 해온 양씨가 없다보니 일감이 밀릴 수밖에 없다. 이젠 모든 일을 부인 석영인씨가 처리해야 한다.

석씨는 기계에 세탁물을 돌리고, 재봉틀로 수선을 하고, 근처 아파트로 배달을 나간다. 차가 있긴 하지만 석씨의 운전면허가 장롱면허인지라 운전은 못한다. 하루 종일 걸어 다니며 세탁물을 수거하고 배달하는 일이 너무 힘들어 운전을 해볼까도 했지만 ‘당신마저 사고 치면 어찌 되겠냐’는 남편의 말을 따라 걸어서 이동하고 있다.

사진더보기

세탁소에서 수선을 하고 있는 석영인씨

석씨는 19살 때 옷 수선 아르바이트(일명 시다)를 하다가 당시 서울 동대문 일대에서 피복일을 하고 있던 남편 양일석씨를 만났다. 남편은 15살 때부터 피복일을 해와 부부 모두 이분야에서 15년, 20년 째 일하고 있다.

이들 부부에게는 세 자녀가 있다. 큰딸 양예진(9), 둘째딸 현진(3) 그리고 막내아들 승환(2), 이들에게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보물이다. 하지만 남편의 구속으로 석씨 혼자 세탁소 일을 하며 세 아이를 돌볼 수는 없게 됐다. 어쩔 수 없이 초등학교에 다니는 큰딸은 반 친구집에서 지내며 등하교를 하고 있고, 둘째와 셋째는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놀이방에 보낸다. 그러나 놀이방은 6시면 끝나기에 6시부터는 석씨의 동생이 회사에서 조퇴하고 와서 아이들을 밤 9시까지 돌봐주고 있다. 주위에서 도움을 주기는 하지만 남편의 빈자리가 너무 크기만 하다. 남편이 있을 땐 밤 11시까지 열었던 세탁소도 9시면 문을 닫고 있다.

민방위훈련 갔다고 했는데... 이젠 뭐라고 해야 할지...

석씨와의 인터뷰 도중 남편의 변호를 담당하고 있는 민주노총 금속노조 법률원에서 한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전날 신청한 남편의 구속적부심이 기각됐다는 것이다. 혹여나 풀려날까 한 가닥 기대를 하고 있던 석씨는 감정을 참지 못하고 울음을 터뜨렸다. 법률원에서는 “이젠 기소가 되어야 보석신청이 가능한데 이 기간이 18일에서 20일 정도 걸릴 것”이라고 했다. 보석신청이 받아들여진다고 하더라도 남편이 돌아오려면 20일 정도를 기다려야 하는 것이다. 석씨는 “남편 없이 일하느라 몸 아픈거야 약 먹으면 되지만... 가슴이 너무 아프다”며 자꾸만 흐르는 눈물을 닦아냈다.

남편 양씨는 동대문 흥인시장에서 오토바이를 타고 피복 배달일을 하다가 배기가스를 많이 마신 때문에 천식에 걸렸다. 2002년 어느 날 갑자기 숨을 못 쉬어 병원에 갔다가 천식임을 알았다. 이때 걸린 천식으로 지금도 가끔 숨이 넘어가는 등 힘들어 한다.
석씨는 이제 20일 정도 걸리는 병보석 신청에 한 가닥 희망을 갖기로 했다.

석씨는 “ 오늘 남편이 풀려날 것이라고 생각하고 남편을 찾는 세탁소 단골손님들에게 ‘민방위훈련 갔다’고 했는데... 아이들한테도 ‘아빠 훈련 가서 다음 주에 올거야’라고 했는데 이제 뭐라고 해야 하나...”라며 긴 한숨을 내쉬었다. 석씨는 이젠 아이들을 시골 친정에 보내야겠다고 했다.

사진더보기

인터뷰 도중 남편의 구속적부심 심사가 기각됐다는 연락을 받고 눈물을 흘리고 있는 석영인씨

말 못하는 3살짜리 아이가 형광등을 가리키는 이유

석씨 부부는 2004년 10월경에 고양시로 이사를 왔다. 그 당시 가진 돈이 천 2~3백만원밖에 없었지만 조그마한 세탁소를 마련하고 같은 건물 지하방을 얻었다. 석씨 부부는 창문도 없고 화장실도 없는 이곳 지하방에서 2년 6개월을 살았다. 그런데 아이들이 아토피가 심해서 환기가 안되는 지하방을 떠나기로 하고 시댁에서 돈을 빌려 2천만원짜리 ‘지상’의 오피스텔을 얻었다.

올 6월에 이사를 했는데 말 못하는 3살짜리 딸 현진이가 천장의 형광등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보채더란다. 이유는 형광등을 켜달라는 것이다. 딸 현진이는 태어나면서부터 2년여 동안을 창문도 없는 지하방에서 자라왔다. 창문이 없으니 햇빛이 들어올 리 없고 때문에 항상 형광등을 켜놓고 지낼 수밖에 없었다. 딸 현진이의 머리위에는 항상 형광등이 밝게 빛나고 있었다. 그런데 지상으로 이사한 날부터 낮에는 형광등을 안 켜놓으니 현진이가 갑작스런 변화에 적응을 못하는 것이었다.

창문도 없는 지하방에서 살아온 때문에, 말 못하는 3살짜리가 방에 누워 천장의 형광등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불 켜달라고 할 때 부모의 심정은 어땠을까. 석씨는 아이가 워낙 보채 두 달 가까이 한낮에도 형광등을 켜주며 적응을 시켰다고 했다.

이처럼 어렵게 지하방 생활을 하며 마련한 세탁소. 워낙 성실한 남편 덕분에 자리를 잡아가던 세탁소는 남편의 공백기가 길어질수록 어려워지고 있었다. 무슨 일이든 마찬가지겠지만 세탁소의 경우 단골 위주의 사업이라 공백기가 길어지면 복구하기도 힘들다. 또 세탁소 일을 석씨 혼자 감당하는 것도 이젠 체력이 달린다.

“처음엔 갑자기 교통사고가 나서 죽는 사람도 있으니까 너무 슬퍼하지는 말자고 다짐했어요. 그런데 금방 풀려날 것이라 믿었던 애기 아빠의 공백이 길어지니까 불안하고 힘드네요.” 한 시간여의 인터뷰를 마친 석영인씨는 밀린 세탁물을 배달하기 위해 부랴부랴 빠른 걸음으로 세탁소로 향했다.

사진더보기

2007년 4월 벗꽃이 만발했던 어느날 석영인씨와 양일석씨가 아이들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