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공무원노동조합 부산지역본부 동래구지부

2007년 대선에 대한 1년 전 전망을 복기해보자. 올해 대선은 산업화세력과 민주화세력의 일대 격돌로 치러질 것이라는 전망이 높았다. 올해는 87년 6월항쟁에서 싹튼 민주화체제가 수립된 지 20년이 되는 해이자, 97년 헌정사상 최초로 정권교체가 일어난 지 10년이 되는 해이다. 대선이 이러한 역사적 의미를 지니면서 민주화세력에 대한 평가가 대선의 향배를 가를 것으로 보았다. 아울러 경제이슈와 평화이슈가 대선의 가장 큰 아젠다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 높았다. 대선을 앞두고 남북정상회담이 개최될 경우 평화이슈가 진보개혁유권자들의 진보적 심성을 자극하면서 경제이슈에서 우위를 점한 보수세력과 팽팽한 균형을 이룰 수 있을 것이라고 보았던 것이다. 마지막으로 양극화 심화 속에서 경제문제를 둘러싼 노선갈등, 즉 성장이냐 분배냐 문제가 주요한 갈등축으로 부상할 것으로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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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FTA가 타결된 직후 노무현 대통령이 관련된 대국민연설을 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전망은 거의 어긋났다. 실상은 민주화세력과 산업화세력의 일대 격돌이 아니라 산업화세력의 절대적 우위 속에 치러지는 선거에 가깝다. 또한 평화 이슈가 대선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하고 오직 경제 이슈만이 부각되고 있다. 진보프레임의 부재 속에서 보수프레임만이 위력을 발휘하는 선거가 되고 있다.
아니 좀 더 냉정히 평가하면 보수프레임도 모호하다. 반노무현 반민주화세력 프레임만이 두드러지면서 보수진영이 반사이익을 취하고 있다. 한국사회여론연구소 10월 16일자 조사에 의하면 국민들의 69%는 이번 대선을 ‘무능한 민주화세력 심판을 위해 현 정권이 교체’ 되어야 하는 선거로 규정하고 있다. ‘부유층을 옹호하는 한나라당이 집권하면 안된다’는 의견은 20.9%에 그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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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 이슈 공감도

이렇듯 철저한 회고투표 속에 후보와 정당에 대한 가치평가가 실종되고 대항프레임도 설 자리를 상실했다. 현 정부에 대한 평가가 유권자의 투표결정을 좌우하는 회고투표의 양상은 정당 간 차이가 약해질 때 나타난다. 즉 유권자들이 집권여당과 한나라당의 정책적 차이를 별반 느끼지 못하면서 이번 선거가 ‘반노무현’ 성격을 강하게 띠게 됐다. 이라크 파병, 한미 FTA 등 핵심적 사안에서 집권여당과 한나라당의 입장이 크게 다르지 않았다. 현 정부는 자신의 정체성을 ‘신자유주의 좌파’로 규정했던 데서도 드러나듯이 보수적 정책노선을 진보적 외피로 위장하면서 진보적 정체성을 사실상 포기하였다. 정체성도 모호하고 능력은 더욱 달리는 민주화세력에게 설득력 있는 ‘진보프레임’을 주문하는 것은 ‘미션 임파서블’인지도 모른다.

사회경제적 문제에 대한 진보진영의 무기력한 대응

진보프레임을 준비할 수 있는 기회와 계기는 그동안 여러차례 있었다. 고원 등 진보진영의 논객들은 2007년 대선에서는 삶의 불확실성을 해결하는 사회ㆍ경제적 비전을 얼마나 설득력있게 제시하느냐가 관건이 될 것이고 이것은 과거의 개혁 대 수구 구도와는 다른 새로운 진보 대 보수의 가치투쟁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경제 문제가 중요하긴 하나 우리사회가 직면하고 있는 경제적 이슈는 단일한 해법으로 결판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현재의 사회양극화라는 구조적 모순을 섬세하게 풀어갈 수 있는 진보적 해법이 절실하다는 것이다. ‘민주주의’와 ‘개혁’ 담론이 중심이 된 과거의 정치경쟁 구도가 급속한 세계화 및 양극화 과정을 거치면서 사회경제적 이슈가 중심이 된 정치경쟁구도로 이동할 것이라고 보았다.
이렇듯 사회경제적 이슈의 중요성에 대해 충분한 문제제기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그 대안은 마련되지 않았다. 당연히 진보프레임도 설자리를 잃었고 철저한 회고투표 속에 ‘경제’ 이슈를 선점한 보수프레임이 득세하고 있다.

부패는 참을 수 있어도 무능은 용서할 수 없다

이번 대선이 무능한 민주화세력 대 부패한 산업화세력의 격돌의 장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어긋난 데는 ‘부패’는 참을 수 있어도 ‘무능’은 용납할 수 없다는 정서가 배어있다. 무능은 국민들의 삶의 문제와 직결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민주화세력 집권 10년에 대해 국민들은 우리사회가 후퇴했다는 절망적인 평가를 내리고 있다. 2006년 11월 28일 실시된 한국사회여론연구소 조사에 의하면 민주화세력이 집권한 지난 10년 동안 우리사회의 변화에 대해 ‘나빠진 점이 더 많다’ 49.3%, ‘좋아진 점이 더 많다’ 39.7%로 나타나 부정적 평가가 우세했다. 특히 민주화세력을 떠받친 핵심축이었던 386세대, 고학력, 화이트칼라 등 중산층에서도 긍정적인 평가가 높지 않게 나타난 점은 민주화세력에게 매우 뼈아픈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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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민주화세력 집권 10년 평가

분야별 평가로 들어가면 특히 사회경제적 부문에서 평가가 낮게 나타나고 있다. 앞의 조사에서 지난 10년 동안 민주화세력이 가장 잘한 부분에 대해 질문한 결과 ‘인권신장’과 ‘남북간 평화정착’, ‘정치개혁 및 민주화’ 등 주로 정치적 과제가 높은 평가를 얻었다.(중복응답). 한편 ‘모름/무응답’도 54.6%로 매우 높게 나타나 국민들의 상당수가 응답을 회피했음을 보여 주는데, 이는 민주화세력이 잘한 부분이 없다는 부정적 평가가 반영되었기 때문으로 해석된다. 가장 낮은 평가를 받은 분야는 ‘법질서 및 사회기강확립’, ‘사회통합’, ‘경제성장’ 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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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민주화세력 가장 잘한 부분

이것의 자연스런 귀결은 산업화세력에 대한 기대다. 향후 우리사회를 이끌어갈 세력으로서 산업화세력과 민주화세력 중 어느쪽에 더 신뢰가 가는지에 대한 질문에서 ‘산업화세력’ 54%, ‘민주화세력’ 31.1%로 나타났다. 개혁성향이 가장 높은 30대에서도 산업화세력이 민주화세력 보다 더 높은 신뢰를 얻었으며 40대에서는 전 연령층 중 산업화세력에 대한 신뢰가 가장 높게 나타나고 있다. 이것이 무능한 민주화세력의 현주소이고 올해 대선에서 진보프레임이 무기력할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진보, 프레임과 헤게모니 모두 박탈당해

기실 이같은 위기의 징후는 2005년부터 충분히 감지되었다. 탄핵 역풍으로 거대집권여당이 된 열린우리당에 대해 무능, 무원칙, 부패라는 질타가 잇따랐다. ‘무능’은 어쩔 수 없는 능력의 한계로 보아 넘기더라도 무원칙과 부패 문제는 꼭 해결해야 하는 문제였다. 그러나 민주화세력이 주축이 된 집권여당은 집권 기간을 민주화세력에 대한 보상으로 오인하면서 기득권화되어 버렸다. 무능에 무원칙, 부패까지 덧붙여지면서 민주화세력이 지녔던 진보적 헤게모니는 자취를 감추었다. 역대 선거에서 민주화세력은 선거의 승패와 관계없이 헤게모니상의 우위를 확보해왔으나 이번 선거는 보수진영이 완전히 헤게모니를 장악하고 있는 상황이다. 2007년 대선은 진보프레임과 진보진영의 헤게모니가 국민들에 의해 박탈당한 선거에 가깝다.

연대와 복지의 진보프레임 필요해

그렇다면 올해 대선에서 진보프레임을 구축하는 것은 사실상 어렵지 않느냐는 비관론이 제기될 수 있다. 하지만 진보프레임은 선거의 승패와 관계없이 ‘미래가 있는 패배’를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하다. 민주화세력이 사실상 사망선고를 받은 상황이기에 이후를 준비하는 진보프레임 마저 없다면 한국의 정치는 일본 정치처럼 자민당의 일당 지배체제가 고착화되고 다른 정당들이 반영구적 소수정당으로 전락하는 1.5당 체제로 전락할 수도 있다.

다행히도 진보프레임을 위한 최소한의 정치적 토대는 구비되어 있다고도 볼 수 있다. 세력면에서 민주화세력, 진보개혁세력이 철저히 외면당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사회의 주요 아젠다 및 이슈에 대한 국민 여론은 진보 우위의 흐름이 존재한다. 한국사회여론연구소가 2004년 이후 꾸준히 진행해온 차기정부 이념성향에 대한 조사에 의하면 보수안정성향의 정부와 진보개혁성향의 정부가 비슷하게 나타나고 있다. 이미지 상의 우위를 넘어서 진보성향 정부에 대한 요구가 충분히 존재한다고도 해석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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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차기정부 이념성향

또한 여론상으로 평화와 복지 쪽 우위 흐름이 존재한다. 한국사회여론연구소 2월 22일자 조사에 의하면 복지 등 정부의 사회적 투자를 위한 재원으로서 세금에 대해 ‘세금을 더 내고 사회복지를 늘려야 한다’는 응답이 50.5%로, ‘세금을 덜 내고 개인소득을 늘려야 한다’는 응답 46.1% 보다 높게 나타나고 있다. 북한을 국가로 인정하는 문제, 즉 헌법 3조의 영토조항을 개정하는 문제에 대해서도 ’필요하다’는‘ 응답이 45.1%로, ‘필요하지 않다’는 응답 41.4%에 비해 더 높게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점을 고려할 때 설득력있는 진보프레임은 승자독식의 성장주의에 맞서는 사회적 연대와 복지강화 프레임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단순한 복지강화 프레임으로는 소구력이 약하다. 복지의 강화가 더디 가더라도 우리사회의 진정한 풍요로 이어질 수 있는 길이라는 점을 섬세하고 정교하게 담아내는 프레임이 절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