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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시간: 2005년05월0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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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정부 낙하산 인사 여전?”

“적격성 여부에 대한 고려 없이 무조건 출신배경만을 문제 삼아 정치인이나 관료 등 외부로부터 임명을 소위 ‘낙하산 인사’로 비판하는 것은 옳지 않다. 그런 논리라면 현재 공직개방을 통해 정부 고위직에 민간인을 임명하는 것도 또 다른 형태의 ‘낙하산 인사’란 말인가”
지난 달 14일 한나라당이 최근 3년간 정부가 92명의 낙하산 인사로 정부산하기관장과 상근감사를 임명했다고 주장하자 이에 권혁인 청와대 인사관리비서관이 이를 반박하며 했던 말이다.

그러나 참여정부 출범 후 지난 2003년 4월15일 ‘정부산하단체 인사운영쇄신 지침’이 각 산하기관에서는 잘 지켜지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지침에 따르면 ‘정부산하 88개 기관은 공모제를 통해 기관장을 뽑고, 나머지 기관은 퇴직공무원이 6개월 이내 산하기관 재취업을 하지 못하도록’ 해야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 것.

1년 예산 집행 규모가 1조6천 여억원에 이르는 산업자원부의 핵심 산하기관 한국산업기술평가원(ITEP, 이하 산기평). 2일 이곳에 새로 취임한 윤교원 신임원장도 낙하산 인사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김동철 전임 원장에 이어 윤 신임 원장도 산자부 기술표준원장 퇴임 이후 곧장 말을 바꿔 탔기 때문이다. 이 같은 의혹은 1990년대 후반부터 산기평 안에서 노조를 만들고 그 동안 쌓인 부조리를 대외적으로 공개해 한때 해고됐던 김태진, 김준 선임연구원과 안형수 과학기술노조 산기평 지부장에게서 나왔다.

“참여정부, 말로만 공모제?”


안형수 산기평 노조지부장은 “산하기관 투명성 제고 등을 위해 만든 정산법이 오히려 낙하산 인사를 합법화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산기평의 이번 신임 원장 선정과정은 겉보기에는 공모제를 통한 것이었지만 허울 뿐인 공모제라는 것이 산기평 노조의 주장이다. 이들이 제기하는 문제는 산자부 산하기관에 산자부 출신 고위관료가 내려왔기에 낙하산 인사라는 단순한 주장이 아니다. 전문성을 담보로 하는 산하기관에 전직 공무원이 공정하게 선임된다면 오히려 문제가 없다. 다만 이번 산기평의 원장 선임은 참여정부가 표방하는 인사운영 방침에 걸맞는 투명한 기관장 선임 과정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산기평은 지난해 4월부터 시행된 ‘정부산하기관관리기본법(이하 정산법)’에 따라야 하는 88개 산하기관 가운데 하나다. 이에 산기평은 공모제 형식으로 신임 원장을 선정해야 한다. 그러나 참여정부의 ‘정부산하단체 인사운영쇄신 지침’에서는 퇴직 후 6개월 이내 공무원은 산하기관에 재취업할 수 없도록 하고 있다. 올해 3월 13일 부패방지위원회에서도 ‘내년부터 퇴직 1년 이내 공무원은 산하기관에 갈 수 없도록 할 것’을 밝히면서 ‘연내에는 정부 산하기관에서 자율적으로 이를 적용’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하지만 윤교원 산자부 전 기술표준원장은 보직에서 물러나자마자 산기평 원장으로 취임했다.정산법에서 ‘순수한’ 공모제일 경우에는 해당 공무원이 퇴직한 시점을 고려하지 않는다는 예외 규정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안형수 산기평 노조지부장은 “산하기관 투명성 제고 등을 위해 만든 정산법이 오히려 낙하산 인사를 합법화하고 있다”며 “공모제를 해야만 하는 88개 기관을 정해놓고도 ‘순수한 공모제’일 경우 예외규정을 적용하는 것은 눈가리고 아웅하는 처사일 뿐이다”고 주장했다.

그는 “산기평 이외에도 산자부 고위 공무원 출신들이 산하기관에 임원으로 간 곳이 많다”며 “한국산업기술평가원, 에너지관리공단, 한국원사직물시험연구원, 한국생활환경시험연구원, 한국기기유화시험연구원 등의 기관장이 그렇다”고 덧붙였다.

“원장 재선임 협조 요구…답이 뻔한 추천위원회까지”


김태진 선임연구원은 “김호원 산자부 산업기술국장이 지난 2월초 과천 청사로 불러서 당시 김동철 현 원장을 재선임하는데 협조하라고 요구했다”고 주장했다.

산기평의 신임원장 선정과정에서는 지난 1월부터 4개월 동안 많은 잡음이 일었다. 공익제보자(내부고발자)로 사내에서 소위 ‘찍혔던’ 김태진 선임연구원이 산자부 국장에게 불려가 전임 원장의 재선임에 협조할 것을 종용 받기도 했다. 산자부 현직 고위간부가 산하기관의 인사에 직접 개입한 셈이다.

김 선임연구원은 “김호원 산자부 산업기술국장이 지난 2월초 과천 청사로 불러서 당시 김동철 현 원장을 재선임하는데 협조하라고 요구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김 국장이 ‘김동철 원장이 재선임되는데 동의하면 원하는 것을 들어주겠다’”며 “‘김동철 원장이 되지 않으면 평가원이 뒤뚱거리거나 뚜벅이가 될 거고 앞으로 좀 힘들어질 거다’는 식으로 말해 그 자리에서 서로 논쟁이 있었다”고 말했다. 실제로 김동철 전 원장은 1차 공모제를 통해 최종 면접 후보 2인 가운데 한 명으로 다시 뽑혔다. 하지만 이사회는 결국 김 전 원장을 포함해 2명 모두 원장으로 부적합 판정을 내렸다.

또 원장 선정을 위해 열렸던 후보 추천위원회는 산자부와 끊을래야 끊을 수 없는 관계를 맺은 인사들로 채워졌다는 강한 의혹도 수 차례 제기됐다. 정산법에 따르면 산하기관 추천위원회는 정부부처와 이해관계가 없는 민간위원을 5~15인의 50%로 구성하도록 돼 있다. 그 범위는 법조계, 학계, 노동계, 언론계 등에서 고루 위촉해야 한다.

김 선임연구원은 “1차 추천위원들은 산기평에서 자금지원을 받거나 산하기관장, 산자부와 깊은 유착관계에 있는 사람들로 구성됐다”며 “산자부 산하의 한 연구원장, 전 산기평 직원이었던 ‘ㅎ’경제신문 논설위원, 20억 이상 산자부의 지원을 받은 여성단체 협회장, 산자부 지원 100억대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는 모 벤처기업 대표 등이 그들이다”고 증언했다.

그는 또 “이사회에서 각 이사들이 민간추천위원을 적어낼 때 모 이사는 자신도 모르는 사람들을 추천하라는 권유를 받았다고 고백했다”며 “추천위원을 이사회에서 뽑고, 뽑힌 그들이 선정한 원장은 짜고 치는 고스톱일 뿐이다”고 성토했다.

“국가 산업자금의 중추, 산기평의 잃어버린 2년”


김준 선임연구원은 “우리를 해고하고 직위해제 하는 등 인력조정을 위해 산기평은 인력부문 예산을 전년도 대비 30% 삭감했다”고 했다.

안형수 노조지부장과 김태진, 김준 선임연구원은 연간 1조 6천 여억원의 산업분야 연구개발자금을 집행하는 산기평이 지난 2년간 파행을 겪었다고 주장했다. 이들과 노조는 그 동안 회사에 의해 직위해제 4명, 휴업명령 12명, 정리해고 6명, 공익제보자와 노동조합에 대한 각종 형사고발 20여 건을 당하는 등 파행적 기관운영을 몸소 겪었다. 김동철 전 원장이 2003년 4월 30일 아침 7시에 열린 날림 이사회를 통해 선임되고 난 뒤부터다. 특히 예산 부문과 관련한 사실은 지난해 10월 국정감사에서도 지적 받았다.

김준 선임연구원은 “김동철 전임 원장이 오기 전부터 김태진 씨와 나를 포함해 내부고발자를 정리한다는 소문이 돌았다”며 “우리를 해고하고 직위해제 하는 등 인력조정을 위해 산기평은 인력부문 예산을 전년도 대비 30% 삭감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산기평은 자체 운영예산을 25% 늘여 인력 대비 업무 부담은 과중 계산했다.

그는 “나중에 예산이 남아돌자 산기평은 위탁개발비 등으로 연말에 많은 예산을 써 버렸다”며 “국가계약법을 위반하며 수의계약으로만 퇴직 관료들이 연계돼 있는 업체들에 정책 용역사업으로만 17 여억원을 사용했다”고 증언했다. 그는 또 “엠피쓰리를 직무 연관성이 있는 직원이라는 이유로 30~40명에게 갑자기 사줬고 전산장비 구입비로 3억 여원을 지출했던 게 그 무렵이다”고 덧붙였다.

이를 놓고 지난 국정감사에서 김기현 한나라당 의원은 “왜 경쟁입찰은 하나도 없고 수의계약만 했느냐”며 따져 묻기도 했다.


지난해 9월 산기평에서 제2의 노조 설립 신고를 위해 버스 두대를 빌렸을 때 받은 영수증.

또 산기평은 지난해 9월 실장급 이상 간부 직원 80여명으로 구성된 제2의 노조를 설립했다. 사측의 이익을 대변하고 공익제보자가 포함된 현재 노조의 활동을 방해하기 위해서다. 노조 설립 신고를 위해 같은 달 14일 70여명의 간부직원이 업무시간에 버스 두 대를 빌려 타고 강남구청에 몰려가 일종의 무력시위를 해도 회사는 방조했다. 그 결과 설립 신고필증이 이례적으로 사흘만인 17일 교부되기도 했다.

그러나 사측 지원 의혹을 받는 노조에게 사무실을 빼앗긴 현 노조는 ‘진짜’노조를 가리기 위한 행정소송에 들어갔고 지난달 21일 서울행정법원은 기존의 노조 손을 들어줬다. 법원이 간부급으로 구성된 노조의 설립 신고필증의 교부를 취소한 것이다.

마지막으로 김준 선임연구원은 “최근 불거진 서울대 연구비 착복 사건 등 국민의 세금으로 지원하는 수많은 연구지원비가 줄줄 새어 온 사례들도 낙하산 인사 문제와 깊은 관련이 있다”고 주장했다. 그에 따르면 낙하산 인사는 상위 부처의 지시에 복종할 수밖에 없고 자금을 실질적으로 집행하는 산기평의 독립적 운영이 사실상 불가능해지면서 주위의 입김에 쓸려 다닐 수밖에 없다는 것.

“공모제는 공정하고 정당하게 이뤄졌다”

이번 산기평의 원장 공모제에 대한 이 같은 의혹들에 대해 김호원 산자부 산업기술국장과 이사회 핵심 관계자는 전혀 사실무근이라고 답했다.

김호원 국장은 “김태진 연구원이 직접 찾아와 여러 희망 사항을 이야기 했던 것이다”며 “배석한 사람이 따로 있었고 인사권도 없는 내가 그런 말을 한다는 건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된다”고 반박했다. 그에 따르면 그 자리에서 김 연구원에게 평가원 조직을 위해 잘해보자고 말했던 게 와전됐을 가능성은 있다는 것.

김 국장은 또 “새로운 원장이 취임하고 산기평 내부에서도 잘 해보자는 분위기인데 왜 그런 주장들이 새삼스레 나오는지 모르겠다”며 “낙하산 인사 주장은 한 쪽 편향의 주관적인 주장일 뿐이다”고 말했다.

산기평 이사회 핵심관계자 역시 “원장 후보 선정을 위한 추천위원회도 각각의 이사가 복수로 적어낸 명단에서 이사회 회의를 거쳐 공정하게 걸러냈다”며 “이번 공모제는 민주적인 절차에 따라 공정하고 정당하게 이뤄졌다”고 답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