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공무원노동조합 부산지역본부 동래구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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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시간: 2008년03월19일

경향 홈페이지: - 조회 : 443

공무원이 동네북인가

어느 정권이든 첫번째 하는 일은 공직 기강을 강조하는 것이다. 그래야 이전 정권과 차별화시켜 야심차게 내놓은 새로운 정책들을 원활히 집행하기 위한 정권의 입김을 공직 깊숙이 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울러 정권을 잡기 위해 같이 노력한 평생 동지나 공천에서 배제된 국회의원들을 적절한 시기에 고위직 공무원으로 보낼 수 있는 자리가 확보될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현 정권도 예외가 아닌 것 같다. 고위공무원단 제도를 확대 적용하여 고위 공무원의 신분보장을 약화시키는가 하면, 이른 아침 회의를 소집해 체력장 테스트를 하기도 하고, 청사 사무실 칸막이를 트고 심지어 유리상자를 씌워 ‘투명행정’을 문자 그대로 실현하려 하고 있다. 물론 단골 메뉴인 골프장 출입 금지도 무언의 압력으로 재등장했다. 국민의 혈세로 운영되는 공직사회이니만큼 ‘공무원 때리기’는 국민들로부터 인기를 얻는 데에도 그만이다. 공무원이 ‘동네북’인 세상이 언제까지 계속되어야 하나? 참여정부가 실패한 중요한 요인 중의 하나는 관료조직을 적대시하고 자신의 이념을 실현하려 했기 때문이다.

‘지표공화국’이라 불릴 만큼 무수한 평가지표들을 계량화하여 각 부처와 공무원들에게 하달하고, 이에 따라 정책의 집행과정을 위로부터 통제하고 감시했다. 무수히 생산된 이상적이고 감성적인 정책들이 관료의 경험과 현실감의 뒷받침을 얻지 못하고 그대로 집행되었기에 결국 성과 없이 사회적 반발만 키웠던 것이다. 대미 정책이 그러했고, 부동산 정책이 그러했고, 대언론 정책이 그랬다. 결국 공무원 때리기에 혈안이 된 정권에 대해 관료 조직은 아무런 이의 제기 없는 ‘성실한’ 정책수행을 통해 최대의 복수를 한 셈이다.

선진 정치문화는 정치권과 관료조직 간 상호존중의 기반 위에서 자란다. 어느 한편이 다른 편에 대해, 골프를 못 치게 하고, 근무시간 체계를 무너뜨리게 하고, 유리상자에 들어가 대중의 볼거리가 되게 하는 일은 결코 문제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잠시 머물다 가는 정권이 공직의 최대 매력인 자긍심과 업무 안정성을 근본적으로 흔들고 떠날 때 발생하는 문제점은 고스란히 국민의 몫으로 남기 때문이다.

안정적인 공무 환경을 조성하고, 활발한 실무적 의견 제시의 기회를 보장하고, 공공복리를 위해 일한다는 자긍심을 높일 수 있는 제도적 뒷받침이 필요하다. 그러고 나서 엄격한 업적 평가를 통해 공과를 다루고 비리를 척결해야, 공직은 유능하고 신념에 찬 사람들로 채워질 것이고, 우리 모두가 원하는 문제해결 기능을 수행해 나갈 수 있다.

초과근무 수당도 받지 못하고 이코노미 클래스 좌석을 타고 돌아와, 이른 아침 출근하여 읽은 신문에서, 공무원의 항공 마일리지를 국가재산으로 환수하는 것의 정당성만 단편적으로 이야기되고 있는 사회에서 공직사회의 매력은 점점 사그라질 것이다. 이번 보수정권이 지난번 진보정권이 범한 오류처럼 닭의 몫을 비틀어 미숙란을 낳는 일이 없기를 바랄 뿐이다.

〈 최원목|이화여대교수·법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