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 문화제 과정에서 국민들에게 그 심각성이 알려지기 시작한 의료민영화 문제가 인터넷 ‘괴담’ 수준으로 격하되고 있다. 그 선봉장에 보건복지가족부가 서 있다.
보건복지가족부는 민간의료보험을 활성화하는 정부 정책을 걱정하는 국민에게 건강보험의 요양기관 당연지정제도를 유지하니까 의료민영화가 아니라고, 그래서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제주도에서 영리병원을 추진하는 것은 전국적으로 영리병원을 확대하기 위한 신호탄이라는 비판에 대해서는 신임 장관까지 나서서 단지 기우일 뿐이라고 걱정을 할 필요가 없다고 확신에 찬 목소리로 이야기하고 있다.
그런데, 국민들의 걱정이 단지 기우가 아님은 보건복지가족부 관계자를 통해 확인되고 있다. 7월 10일 국회 토론회에서 보건복지가족부는 모든 병원이 영리를 추구하고 있고, 영리법인병원은 단지 다양한 자본조달 형태 중 하나일 뿐이라는 요지의 발언을 하였다.
물론 토론회에서 영리(법인)병원의 허용을 전국으로 확대할 생각이 없다고 밝혔지만, 이러한 생각이라면 영리(법인)병원을 굳이 제주도만 국한할 이유가 없어지게 된다. 지금은 국민들의 반대가 커서 제주도만 하겠지만, 단지 자본조달 형태 중 하나인 영리법인병원을 전국에 확대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는 것을 스스로 밝힌 것이라 할 수 있다.
영리법인병원에 대해 정말 그러한 시각을 갖고 있다면, 의료관광 운운하면서 제주도만 영리병원을 하겠다는 거짓말을 더 이상 하지 말아야 한다. 솔직해질 필요가 있다.
“비영리법인이라고 하는 병원들이 지금 모두 영리행위를 하고 있는데, 영리법인병원을 허용하지 못할 이유가 무엇인가?” “이미 민영화, 영리화 되어 있는데, 조금 더 민영화, 영리화 된다고 해서 큰 문제 될 것이 무엇인가?” 이렇게 속마음을 털어놓고 국민들에게 정책의 타당성을 검증받아야 한다.
그래야만 국민의 건강과 직결되는 정책을 괴담 수준으로 논의하지 않고 공식적인 의제로 격상하여 제대로 된 논의를 할 수 있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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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법에서 병원의 영리 활동을 금지하는 이유
정부는 현재 병원이 영리를 추구하고 있기 때문에 병원의 개설자격을 비영리법인 또는 의료인으로 한정하는 것은 불합리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런데, 문제는 정부가 ‘병원이 영리를 추구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버리는 데에 있다. 어쩌면 그 문제가 우리가 해결해야 할 절대 절명의 과제일지도 모른다.
현행 의료법은 형식적으로는 영리를 엄격하게 금지하고 있다. 의료기관의 개설 자격을 엄격하게 제한하고 있다. 주식회사와 같은 영리법인이 의료기관을 개설하는 것을 막고 있는 것이다. 주주의 이익을 실현하기 위해 영리 목적의 진료를 하거나 해산 등 진료의 영속성을 해칠 수 있는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또한, 영리 목적의 부대사업을 의료적 목적으로 엄격하게 제한하고 있다. 전혀 지켜지지 않고 있지만, 의료기관에 대한 광고도 매우 제한적으로 허용하고 있다. 더 나아가 유인알선도 법으로 금지하고 있다. 그래서 정부는 건강보험을 통한 재정 지원 뿐 아니라 비영리법인병원의 경우 각종 세제 혜택을 주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현행 병원이 영리를 추구하고 있다고 선언하는 것은 현행 의료법에 대해 제대로 이해를 하지 못하고 있거나 직무유기를 스스로 고백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사실 근대적 의미의 의료기관은 공공적 성격이 매우 강한 공간이었다. 따라서 소유주체가 정부이든 아니면 민간이든 상관없이 모두 공공적 성격을 강하게 갖는다.
선진외국의 비영리민간병원이 공공병원과 큰 차이 없이 운영되고 정부의 재정지원도 공공병원과 동일하게 받고 있다는 것이 실증적인 예이다. 일부 영리법인병원이 있지만, 대부분 공공병원과 비영리병원을 통해 전체 국민의 의료적 요구가 모두 해결되기 때문에 일부 계층이나 일부 비의료적 부분에 초점을 맞춘 영리법인병원이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어떠한가? 정부가 의료법의 정신을 제대로 구현하지 못하여 비영리법인이 운영하는 병원인데도 영리추구적 모습을 강하게 갖는다거나 외국에서 좀처럼 보기 어려운 개인소유의 병원 비중이 매우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된 것이다.
그 결과 의료적 필요에 따라 병원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돈 되는 곳에 병원이 몰리고 모든 환자가 대형병원을 지향하는 기형적 구조가 정착되어버렸다.
이상한 수가제도와 맞물려 정말 필요한 의료서비스는 제대로 제공되지 못하면서 불필요한 검사, 투약 등은 과잉으로 제공되는 등 비정상적인 상황이 반복되고 있는 실정이다.
어쩌면 문제의 해답은 매우 간단할지도 모르겠다.
애초의 의료법이 만들어진 문제의식을 실현하면 해결은 간단하다. 물론 각각의 구체적 과제가 쉽게 실현될 수 있다는 것은 아니다. 이미 이해관계가 형성된 수많은 주체들이 문제를 왜곡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모든 국민이 당연하게 누려야 할 보편타당한 권리로서 건강권을 실현하고자 한다면, 또한 정보의 비대칭성, 수요의 예측 불가능성 등 의료의 본래적 특성이 시장을 통해 문제를 풀어나갈 경우 필연적으로 시장실패를 발생시킬 수밖에 없는 의료의 특성에 천착하고자 한다면 의료의 공공성은 당연하게 붙잡고 가야 할 가치이자 과제여야 한다.
그러나 정부는 지금 정반대의 길을 가려고 하고 있다. 의료법의 정신을 제대로 구현하기 위해 제도를 손질하고 개선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망쳐버렸기 때문에 극단으로 가보자는 것은 정부가 할 일이 아니다.
오히려 과거의 잘못을 반성하고 제대로 된 길을 갈 수 있도록 역량을 집중하는 것이 정부가 해야 할 일이다. 특정 자본과 특정 의료제공자의 이해관계에 밀려 국민의 이해와 배치되는 길로 가는 것은 민주정부 하에서 용납할 수 없는 행위다.
영리병원은 국민에게 고통만 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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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국민의 뜻에 반하여 영리병원을 도입한다면 우리 사회에 치명적인 고통을 안겨줄 것이 확실하다.
먼저, 급격한 의료비 상승과 가계부담의 증가로 국민 고통을 가중시킬 수밖에 없다. 만약, 영리병원의 개설이 허용되거나 그에 준하는 정책이 관철될 경우 단기적으로 과잉 공급의 문제를 파생시키고 병원 간 경쟁을 격화시키게 될 것이다.
일반적인 시장이라면 경쟁이 커지면 가격이 떨어지겠지만, 의료부문은 철도, 전력 등과 같이 공공적으로 관리되지 못할 경우 오히려 가격이 올라가 의료비 상승으로 이어지게 된다.
영리병원이 비영리병원에 비해 진료비용이 비싸다는 것은 이미 미국의 많은 실증 연구에서 지적된 바도 있다. 영리병원의 경우 의료의 특성상 정보의 비대칭성 내지 소비자의 무지를 악용해 질의 상승 없는 비용 상승을 초래할 개연성이 크다.
더욱이 영리법인은 이윤을 내기 위하여 비보험분야에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일 것이고, 이는 추가적 의료이용을 통해 의료비의 상승을 가져올 것으로 예상된다.
이렇게 될 경우 공공의료의 영역을 더욱 축소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게 되고 저소득계층의 의료에 대한 접근성은 더욱 나빠지게 될 것이 예상된다.
물론 우리나라의 경우 영리병원이 허용되면 일부 부가서비스의 질 분야에서 고용 창출 효과가 나타날 수도 있지만, 서비스 질에 대한 환자의 감수성이 인력보다 시설 및 장비에 민감하고 인력 중에서 특정 인력(의사)에 더 민감하다는 점에서 영리병원의 도입이 전반적인 인력 확대로 이어지기 보다는 다른 분야 또는 특정 부분에 맞추어 제한적으로 이루어질 가능성이 크다.
또한, 영리병원이 허용된다는 것은 건강보험의 요양기관 당연지정제도가 없어진다는 것을 의미하게 되는데, 그 결과 민간의료보험이 활성화되고 건강보험이 약화되는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경쟁력이 있고 서비스의 질이 높은 병원은 민간의료보험과 계약을 체결하고 수익이 증대할 가능성이 큰 반면, 경쟁력이 없고 서비스의 질이 좋지 않은 병원은 민간의료보험과 계약을 체결하지 못한 채 공적 의료보험체계 내에 남게 되어 서비스의 질적 수준에 따라 민간의료보험과 공적 의료보험으로 양분되는 현상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더욱이 민간의료보험회사는 현금상환 방식의 보충형 민간의료보험 때와 달리 병의원에 대한 통제를 강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구체적으로 평가에 따른 계약의 차별화를 시도함으로서 병의원의 내부 계층화가 심화될 것이 예상된다.
그렇게 되면, 필수적인 분야에 자원 배분이 우선적으로 이루어지기보다 수익성이 높은 분야에 자원의 집중이 이루어짐으로서 인력, 시설, 장비, 재원 등 자원 배분의 왜곡이 발생할 수밖에 없게 된다. 특히, 영리병원이 단기적으로 수익성에 편승해 진료과목의 진퇴나 병원기능의 변경이 빈번하게 일어난다면 지역의료공급체계에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커지게 된다.
다음으로, 영리병원은 건강보험이 적용되는 필수의료보다 부가적인 의료서비스를 강화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비용 증가와 함께 의료서비스의 질에 있어서 불균등성이 커질 수밖에 없다.
일반적으로 영리법인은 특성상 주주의 이익을 대변해야 하기 때문에 수익성이 떨어지는 필수 의료나 사회적으로 필요성이 있는 저소득 계층 환자의 진료 기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필수 부분의 질은 오히려 떨어질 수 있다.
마지막으로 이러한 방식으로 영리병원이 활성화되면, 경쟁력 있는 병원과 그렇지 못한 병원 간에 노동조건에서 양분화 현상이 커지게 될 것이 예상된다.
단기적으로 경쟁력 있는 병원의 노동자는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고용을 보장받을 수 있지만, 경쟁력이 없는 병원은 당장 구조조정의 위기에 봉착할 수 있다.
장기적으로는 경쟁력 있는 병원도 구조조정의 위협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따라서 수익모델이 가능한 부문은 고용의 안정성이 보장되겠지만, 수익모델이 나지 않거나 적은 곳은 외주화 또는 비정규직 고용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표출될 것으로 예상된다.
결국, 영리병원 정책은 병원의 양분화 뿐 아니라 병원 내부의 양분화를 본격화하는 기전으로 작동할 것이다.
정부가 해야 할 일
현재 정부는 영리병원이 국민에게 미칠 영향에 대한 심도 깊은 평가와 연구, 그리고 의견수렴을 거치지 않은 채 제주도에서 영리병원을 추진하고 있다.
현재 한국 사회가 안고 있는 보건의료의 수많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으로는 한참 잘못된 길이다.
현재 우리 사회에 필요한 것은 영리추구적으로 변해버린 의료부문을 공공적으로 바꾸는 것이지 영리병원을 가져오는 것이 아니다. 이는 더욱 더 깊은 수렁으로 국민들을 몰아가는 것에 다름 아니다.
촛불문화제에서 가장 많이 불리는 노래가 있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국민의 기본권을 보호할 뿐 아니라 적극적으로 실현하도록 우리는 선거를 치르고 정부를 세웠다. 그런데, 정부가 가장 기본적인 국민의 건강권을 제대로 보호하지 못한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현 정부가 국민의 건강권을 보호할 뜻이 있다면, 그에 반하는 의료민영화 정책, 그 정점에 있는 ‘제주도 영리병원 도입’을 포기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리고 그 공격의 끝을 영리적으로 운영되고 있는 현 보건의료체계를 공공적으로 바꾸는 일에 맞추어야 한다. 그것이 바로 잃어버린 정부의 신뢰를 되찾는 시작점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기사입력 : 2008-07-25 11:02:12
최종편집 : 2008-07-25 11: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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