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산행을 가면서 자주 본 팻말이다. 아니 전에도 많이 봤을것인데 워낙 산행초보라 발만 보고 다니느라 눈에 안들어 왔을 것이다. 이제 예전보다 배낭이 덜 불편하고 등산화도 덜 어색하다. 크고 높다란 바위가 예전보다 무조건 막막하고 두려운 것도 아니다. 그러니 이런 팻말도 쉽게 보이리라.
이 팻말을 보면서, 이처럼 무조건 버리지 말라고 하는 것보다 버리지 말아야 하는 이유까지 덧붙인다면 훨씬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귤껍질은 썩는데 오래 걸리고 썩으면서 좋지않은 성분이 나와 땅을 오염시킨다"는 한 지인의 말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이왕 붙일 것...왜 버리지 말아야 하는지도 몇 줄 써서 붙이면 훨씬 공감하고, 그럼 훨씬 많이 호응하지 않을까? 과일 껍질을 버림으로써 발생하는 문제들을 함께 언급해준다면 환경 문제에 훨씬 관심을 두지 않을까? 훨씬 과학적인 국민들이 되지 않을까?" 라고 말이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을까? 또다른 이유가 있을까?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사진을 찍으며 아무것도 모르는 척, 옆에 앉아 쉬고있는 등산객들에게 물어봤다.
"왜 과일 껍질을 버리지 말라는 거죠? 과일 껍질은 쉽게 썩지 않나요?"
-귤껍질은 잘 안썩는대요. 그래서 귤껍질만 버리지 말라는 걸꺼예요.
-과일 껍질도 좀 버리고 그래야 동물들도 먹고 살고 그럴건데...왜 버리지 말라는 거지?
-이런 것 난 처음보는데? 다른산에서는 못본것 같은데?
-뭐 보기 싫으니까 그렇겠지. 여기저기 버리면 지저분하잖아!
"레즈비언 갈매기"들이 느는 이유는?
산에 과일껍질을 버리지 말라고? 잘 썩기때문에 땅에 거름이 되니깐 버려도 된다고 얼마전까지 생각했는데? 아니었나? 산에 거의 가지 않았지만 그래도 한 두번 내가 버린 과일껍질들...문득 부끄럽단 생각이 들기도 했다. 산을 내려오는 동안 이런저런 짐작을 해본다.
요즘 과일들은 농약에 많이 오염되어 있다. 수입 과일들은 방부제 처리도 한다고 한다. 이런 과일 껍질을 땅에 버리면 우선 땅이 오염될 것이다. 그리고 농약과 방부제가 묻은 껍질을 먹은 동물이나 곤충들은 어떻게 될까? 껍질에 남은 방부제나 농약 성분들이 몸에 축적, 유전자를 교란시켜 돌연변이나 기형을 발생 시키기도 할 것이다. 충분히 가능한 문제다.
2006년도엔가 어떤 책에서 본 레즈비언 갈매기 생각이 난다. 어떤 학자가 갈매기의 개체수가 느는 것을 조사하던 중 이상한 점을 발견한 것. 암컷들끼리 짝짓기를 하는 갈매기들이 유독 많았다. 그리고 수컷은 짝짓기에 대한 의욕을 상실, 자포자기 상태였다.
왜 그런걸까? 왜 레즈비언 갈매기들이 늘고 있는 걸까? 무엇이 수컷 갈매기들의 생식 능력을 방해하는 걸까?
최근 그 원인이 밝혀졌다. 갈매기 몸에 과다축적된 환경호르몬이 여성호르몬인 "에스트로겐"을 흉내, 갈매기의 생식능력을 방해하는 것이었다. 갈매기의 생식을 방해하는 이 물질은 오래 전에 살포한 농약에 있었다. 이런 사실은 우리들이 산에서 버리는 과일 껍질이 자연 생태계를 교란시키는 한 원인이 된다는 주장의 충분한 근거가 된다.
혹은 모른다. 이런 팻말을 달기전 등산객들이 무심코 버린 농약 투성이 과일 껍질을 먹은 어떤 곤충이 이미 돌연변이를 했을지도. 혹은 멸종하는 이유가 됐을지도...혹은 모른다. 훗날 이와같은 레즈비언 갈매기 사례와 같은 동물이나 곤충이 앞으로 늘지도...생각할수록 끔찍하다.
혹은 말한다. 과일껍질을 버림으로써 산새나 벌레 등도 먹고 살 수 있지 않을까? 글쎄 그럴지도 모른다. 하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닌것 같다. 요즘처럼 꽃이 만발한 계절에도 지난 해 맺은 열매들이 심심찮게 보이니 말이다. 지난 겨울에 먹이가 절대적으로 부족했다면 산짐승들이 이 열매들을 남겨두지 않았을 것 아닌가.
얼마전 집 뒤 공원에서 본 집비둘기 몇 마리가 생각난다. 흰비둘기 한마리가 바위에 앉아 쉬는 등산객 옆에 바짝 붙어 뭐라고 했는지 먼산을 바라보고 있던 그 등산객이 비둘기를 쳐다봤다. 그리고 앞을 다시 봤건만 등산객에게 뭐라고 자꾸 요구하는 비둘기. 모르긴 몰라도 무언가 얻어먹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혹자들은 야생동물들이 사람들이 주는 먹이를 먹음으로써 야생성을 잃는 원인이 된다는 말도 한다. 등산객 옆에 앉아 먹을 것을 보채던 비둘기를 보면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다.
과일 껍질을 버리면 안되는 이유는 또? 사람들이 과일껍질을 주로 버리는 곳은 대부분 사람들이 잘 다니는 길과 쉬기 좋은 장소이기 쉽상이다. 사람들이 쉬기 좋은 곳에 버려진 과일껍질, 그 껍질에 꼬인 벌레들. 자연생태계에 대한 경각심이나 별다른 지식이 없어도 이 자체만으로 생각해보면 산에 과일껍질을 버리지 말하는 이유 쉽게 떠오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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